“나를 찾고 싶다면 서쪽 하늘을 봐! 홀로 날고 있지만 나는 자유로워! 어떤 마법사도 나를 끌어내릴 순 없어, 이젠!” -뮤지컬 ‘위키드’ 중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
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위키드’에서 화려하게 날아오른 건 배우 손승연이다. 가수로서는 2012년 오디션 쇼 ‘보이스코리아’ 우승 후 ‘복면가왕’과 ‘불후의 명곡’ 등에서 폭발적 가창력을 보여주며 미국 팝 시장까지 넘보는 활약을 펼쳐왔지만 배우로서는 2019년 뮤지컬 ‘보디가드’에 출연한 게 전부인 신인이다.
초록피부에 마법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엘파바는 세상 사람들 손가락질과 차가운 시선에 익숙하다. 불같은 성격에 까칠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권력자들은 거짓 음해와 사실 왜곡으로 그녀에게 ‘악한 마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운다. 지난 2월부터 엘파바로 사는 손승연에게 그 심경을 물어봤다.
“엘파바는 남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놀림당하고 핍박받아요. 저도 사실 가수 하기 전에 외모로 세상과 많이 부닥쳤어요.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는 직업인데 왜 외모로 판단하나’라면서 반드시 가수로 성공해 보이겠다고 다짐했죠. 막상 가수가 되니 생각보다 힘든 직업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사랑하던 일이 노동이 됐어요. 원하지 않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벌어졌고, 이 직업 자체가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 쉬운 일이다 보니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는데 아마 그게 엘파바가 막상 오즈의 마법사 실체를 알고 나서 갖게 된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학창 시절 모습도 엘파바랑 비슷해요. 소위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여서 아니꼽게 보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왕따도 경험했고. 하하. 마치 엘파바처럼 애교는 일(1)도 모르는 아이였죠. 저한테도 힐링이 되는 작품이어서 너무나 애착이 갑니다.”
대작 무대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어렵기만 했던 손승연은 “키도 크고 여러모로 역대 엘파바와 다르지만 좋다”는 객석 반응에 자신감을 얻었다.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자’는 ‘위키드’ 메시지대로 내 연기를 봐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공연 초반에는 (위키드 초연 멤버인) ‘옥주현·정선아’ 쫓아가느라 다리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오로지 해야 할 것만 기억해서 하느라 바빴죠.”
엘파바가 보여주는 최고의 장면은 단연 세상의 거짓과 싸우고 약자를 지키겠다며 마법으로 빗자루를 타고 무대 위로 날아오르는 1막 끝부분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날아오른 무대 위에선 객석이 어떻게 보일까.
“많은 분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그 장면이 정말 음악과 조명, 세트에서 많은 ‘큐(지시)’가 엄청 맞물린 구간입니다. 무섭고 어쩌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조금도 대본과 틀리지 않게 정확한 대사를 치고 노래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미 하늘에 떠 있어요. 항상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죠.”
지난 2월 개막했던 ‘위키드’ 이번 서울 공연은 2일 끝났다. 손승연은 20일 시작되는 부산 공연에서 다시 무대에 선다.
“부산에선 처음 공연하는 거라서 부산 관객 만나는 게 기대돼요. 또 아무래도 지방 가면 더 똘똘 뭉치는 게 있으니까 위키드 가족이 더 가까워지고 친해져서 정말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공연도 더 찰싹찰싹 달라붙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5월 20일부터 6월 27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