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중 재미있는 사람 있다는 것 유튜브 통해 생생히 보여주고 싶어” [차 한잔 나누며]

‘장애인식 개선’ 앞장 유튜버 김한솔씨
고교시절 실명 불구 좌절하지 않아
‘소주 이름 맞히기’ 등 영상 큰 인기
개설 1년 6개월… 구독자 16만명
댓글보며 생각나눌 때 보람 느껴
“장애 가진 사람들 꿈실현 돕고파”
시각장애인 유튜버 김한솔(28)씨가 지난 1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교정에서 구독자 16만명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느낀 뿌듯함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처음엔 장애에 대한 호기심으로 봤다가 이제는 제가 좋아서 본다는 댓글을 볼 때 가장 기뻐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장애학생 휴게실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김한솔(28)씨는 인터뷰가 진행된 1시간여 동안 내내 ‘유쾌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원샷한솔’을 설명할 때는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영락없는 ‘진행자 김한솔’의 모습이었다. 댓글을 보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그는 “장애인 중에도 재미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유튜브를 통해 시각장애인으로서 겪는 다양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채널엔 ‘무겁고 우울하지 않아 재밌게’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영상이 많다. ‘소주 이름 맞히기’, ‘치킨 속 닭다리 찾기’, ‘대중교통 타기’, ‘키오스크로 주문하기’처럼 유쾌하면서도 비장애인이 알지 못했던 낯선 일상을 보여준다.

김씨는 “(미디어에서) 장애인은 맥락 없이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고, ‘천사 같은’ 비장애인이 나타나 도와주는 방식으로만 그려지는 것이 싫었다”며 “장애인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의미 있는 사회실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채널을 개설한 지 1년6개월여가 된 현재 그의 영상을 구독하는 사람은 16만명에 달한다.

김씨는 11년 전 시력을 잃기 전에도 꿈이 많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한 방송사의 유명 시트콤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한테 나를 보여주는 것도 좋아한다”며 “무엇보다 내가 재미를 느껴야 하고, 하고 싶은 걸 파고드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이런 성격은 김씨가 시각장애를 갖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앞둔 그에게 주변에서는 특수교육학과나 사회복지학과를 권유했다. 장애인 학생이 많이 가거나 장애와 관련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얼마나 학과가 많은데 장애인이라고 왜 정해진 길을 가라는 건지 반발심이 들었다”며 “시각장애인이 하지 않는 걸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각기 다른 대학의 특수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경영학과를 최종 합격한 김씨의 선택은 경영학과였다.

그가 경영학도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반발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훗날 장애인을 위한 복지재단을 만들려면 경영학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김씨는 “장애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하고 싶다”며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누구든지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의 대학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거의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학과 특성상 전공수업에서 수치와 그래프의 쓰임이 많았지만 점자책도 음성안내도 전무한 상황이었다. “강의를 들어도 머릿속에 빈칸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는 그는 매번 교수를 찾아가 자신의 장애를 설명하고 자료를 요구해야 했다. 김씨는 “학교에 공부하러 왔는데 학교를 설득해야 했고, 같은 대학생인데도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다”며 “사회에는 더 많은 장애물이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숱한 좌절을 경험해야 했던 김씨는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모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장애학생 동아리를 새로 만들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뜻에 동참한 학생들이 동아리 조직에 힘을 보탰고, 창고와 다름없이 방치되던 장애학생 휴게공간도 새로 꾸몄다. 김씨는 “여기 와서는 우리끼리 밤새고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응어리졌던 것을 풀곤 했다”며 “다들 답답함을 안고 살았다는 걸 깨닫고 나도 모르던 장애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장애인식개선강사’가 되고 싶다는 그는 ‘꼰대’를 꿈꾸고 있기도 하다. 김씨는 “10∼20년 후에 ‘나 때는 혼자서 버스도 못 탔어’라고 말하면 어린 친구들이 믿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변화했으면 좋겠다. 그런 꼰대라면 기쁘게 될 것 같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종민·이정한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