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0’에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끌 다양한 제품이 전시됐다. 그중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제품은 미래도시의 하늘길을 누비게 될 항공택시(Air Taxi) 콘셉트모델이었다.
미래도시의 단거리 항공운송 생태계를 담당할 ‘도심항공교통’(UAM)의 전 세계 시장규모는 2030년 3200억달러(358조9120억원), 2040년 1조5000억달러(1682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다 보니 보잉과 에어버스 등 기존 항공업체뿐만 아니라 현대와 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까지 UAM 생태계용 개인용 비행체(PAV)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비행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요소 ‘감항인증’
감항인증(堪航認證)이란 항공기 개발 및 개조 시 구조 및 강도, 성능 등 비행하기에 적합한 안전성과 신뢰성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해 항공기 설계단계부터 도태 시까지 전체 수명주기 동안 비행안전성이 있다는 것을 정부가 보증하는 것을 말한다.
감항인증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 항공기 상용화 이후 비행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프랑스를 중심으로 파리항공위원회가 개최되었고, 그해 항공기의 감항인증을 의무화하는 파리조약을 체결한 것이 시초다. 이후 1944년 급속한 발전이 예상되던 민간항공의 안전한 운송체계 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미국 시카고에서 국제민간항공회의가 열렸고, ‘시카고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3년 뒤인 1947년에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창설되고, 1948년부터 본격적인 감항인증 활동이 이뤄지게 된다.
1952년 ICAO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1963년 항공안전법을 제정하면서 감항인증 제도를 의무화했다.
군용항공기는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비행안전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감항인증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비롯해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등 다양한 유·무인 군용기가 감항인증을 통해 운용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2009년 ‘군용항공기 비행안전성 인증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감항인증 제도를 공식화해 FA-50 경공격기, 한국형기동헬기 ‘수리온’ 등의 항공기에 적용하고 있다. KF-21도 향후 감항성 심사 등을 거쳐 설계에 대한 안전성이 확인된 뒤에야 비행이 가능하다.
국방기술품질원 김형근 감항인증연구센터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국내 독자기술만으로 전례 없는 전투기 개발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라며 “KF-21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비행안전성, 즉 감항인증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의 개선 과정에서 얻는 경험과 교훈들이 우리의 기술력으로 축적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 인한 “수출과 고용 창출의 기회는 덤”이라고 설명했다.
◆감항인증의 중요성을 확인시킨 사례들
미국 보잉사가 개발한 최신 항공기인 ‘B737 맥스(MAX)’ 추락사고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여객기와 2019년 3월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의 잇따른 추락사고로 B737 맥스의 안전성은 도마에 올랐다. 두 참사로 모두 346명이 사망했다. 사고 직후 미국을 비롯한 40여 개국에서 운항을 중단했고, 각국 항공사들의 수주 역시 끊겼다.
사고 원인은 항공기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 반응하면서 기체 조종 통제권이 상실돼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잉사는 인도네시아 사고 이후 이러한 시스템 결함을 인지하고도 제때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아 에티오피아 참사까지 부른 것으로 파악됐다. 감항인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른 참사였던 셈이다.
군용항공기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11월 미국 공군 소속 F-15C 전투기 1대가 공중에서 두동강 나면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미 공군의 조사 결과 동체를 지지하는 빔에 금이 간 것으로 드러났는데, F-15A에서 D까지 구형 F-15 전투기 450대 중 162대가 유사한 설계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행안전성보다 전투기 임무성능 향상을 위해 최첨단 기술 적용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미국 정부가 2000년대 초 ‘군용항공기 감항인증 제도’를 도입해 자국 영공을 비행하는 모든 군용항공기에 대해 감항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한 배경이다.
무인항공기의 감항인증이 도마에 오른 전례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추진된 독일의 ‘글로벌호크’(RQ-4) 구매사업을 들 수 있다. 당시 독일이 미국에서 도입하려 했던 글로벌호크에는 자동공중충돌회피장비(ACAS)가 누락돼 있었다. 이에 유럽항공안전국(EASA)은 글로벌호크에 대한 감항인증 승인을 불허했고, 유럽 상공에서의 글로벌호크의 비행은 불가능했다. 비행을 위한 감항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추가 비용에다 도입 일정 지연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독일 국방부는 2013년 글로벌호크 도입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비행시험을 위해 선구매했던 1대의 글로벌호크는 2021년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 옮겨 전시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인기가 뒤덮는 미래 하늘 안전은 어떻게 담보하나
미래에는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뿐만 아니라 드론 등 무인 항공운송 수단들이 하늘을 뒤덮을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방송·소방 등 분야에서 드론으로 대변되는 무인항공기 활용이 확대되고 있으며, 미래 차세대 운송수단으로 ‘플라잉카’, 즉 개인용 비행체(PAV)가 개발되고 2030년 이후에는 상용화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안전성 담보다.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는 설계 및 실행 단계에서 안전기준이 충분히 충족됐는지 인증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국토해양부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초경량비행장치 사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용 드론 운용 중 조종성 상실로 인한 인명사고가 있었고, 행사에 동원된 소형 드론이 급작스러운 돌풍으로 중심을 잃고 추락해 지상에서 이를 지켜보던 관중이 부상을 입은 사례도 있었다.
특히 군은 무인항공기에 갖가지 무장을 장착해 운용하는 탓에 자칫 사고로 이어지면 민간항공기보다 더 큰 인명피해와 재산상 손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군용항공기 비행안전성 인증에 관한 법률에는 최대이륙중량 25㎏ 초과하거나 무장 장착 또는 탄약·유류 운송을 위한 무인기는 반드시 감항인증을 받도록 돼 있다. 만약 이들 항공기의 비행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공포를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이에 방위사업청에서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소형 회전익 무인기 시스템 감항인증 기준을 마련해 소형 무인기 감항인증에 대한 기술 기준을 확보했다. 기존 중대형 무인기에 대한 감항인증 기준은 있었지만 소형 무인기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 기준은 수립되지 않아 개발기관이 감항성이 확보된 무인기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미래 항공산업 변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감항인증에 대한 수요도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유·무인기는 ‘흉기’나 ‘전시용’ 신세가 될 뿐이다. 감항인증을 수행하는 기관의 역량 강화에 보다 많은 관심과 주문이 뒤따라야 할 때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