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재건축도 ‘일시 정지’… 오세훈, 취임 한 달째 여전한 ‘속도 조절’

오세훈 서울시장. 뉴시스

‘취임 후 일주일 안에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던 후보 시절 오세훈 시장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취임 한 달을 앞둔 시점까지도 서울 재건축∙재개발 상황은 답보 상태다. 기대감이 높았던 잠실주공5단지까지 서울시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서울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호가가 수억씩 뛰고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도 높아짐에 따라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해왔던 오 시장이 상당한 부담감을 느껴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4일 서울시와 송파구청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20일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심의해달라는 취지로 송파구청이 보낸 공문에 사실상 반려 통보를 했다. 서울시는 잠실주공5단지 건은 단순히 보완을 요구한 것이란 입장이다. 과거 보류의 원인이 됐던 사항들이 보완되지 않아 재보완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잠실주공5단지는 2017년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해 수권소위원회 상정을 수차례 요청해왔다. 오 시장 취임 후 재건축 허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박성수 송파구청장까지 나서 서울시에 2년째 표류 중인 재정비계획안의 신속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도 발이 묶인 것이다. 서울시는 교육환경영향평가와 민원 등에 대한 조합원 의견 수렴 등을 요구했는데 일각에선 이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선 전부터 민간 주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우호적인 입장을 강조해왔던 오 시장은 최근 강남 등을 토지거래 허가 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규제 완화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오 시장이 가파른 집값 상승세와 살아나는 매수 심리 등에 부담을 느껴 시간 끌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오 시장 취임 후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서울 강남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폭은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에서 바라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일대 모습. 뉴스1

지난 3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종합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0.71% 상승했다. 재건축 단지가 집중된 서울 강남구의 4월 주택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0.5% 상승해 3월 0.45%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는데 특히 아파트의 매매가격 상승폭은 0.61%로 지난해 7월 0.95% 상승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이 기간 압구정동 현대7차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호재로 인해 80억원의 신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동산원은 “(서울시장 선거 전후)규제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요 재건축 위주로 매물이 회수되고 신고가로 거래됐다”며 “강남구의 경우 압구정동 위주로, 송파구는 잠실과 가락동 위주로 매수세가 증가하며 가격이 상승했다”고 했다.

 

2·4 주택 공급대책 발표 이후 주춤했던 서울 아파트 매수심리도 강남권을 중심으로 다시 강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조사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는 102.7로, 지난주(101.1)보다 1.6p 올라갔다. 3주 연속 기준선(100)을 넘겨 상승한 것이다. 매매수급 지수가 100을 넘어서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음을 의미한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모습. 뉴스1

오 시장은 서울에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과열 양상이 나타나자 긴급 브리핑을 통해 시장 교란행위가 빈발하거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이에 연관된 단지 등은 재건축·재개발이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오 시장 취임 후 강남 재건축 단지 호가가 수억씩 뛰며 주변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집값 상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큰 것을 잘 아는 오 시장으로서는 재건축 규제를 푸는 게 상당한 모험일 수 있다. 당분간은 일단 지켜볼 확률이 크다”고 내다봤다.

 

나진희 기자 naj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