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보고 싶지만 어떡해. 내가 이렇게 초라한데….”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남들은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윤모(56)씨에게선 짙은 술냄새가 났다. 이미 아침부터 소주 1병을 마신 터였다. 쪽방촌에서 불과 100m 남짓한 거리의 번화가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외출한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700여가구가 산다는 쪽방촌은 세상과 동떨어진 듯 조용하기만 했다.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골목에는 햇빛 한 점 들어서지 않았다.
박모(61)씨는 비교적 최근인 4개월 전 쪽방촌에 왔다. 그는 “8살 때부터 가족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에 살던 박씨의 부모는 바다 일을 나갔다가 배가 뒤집혀 세상을 떠났다. 20살 무렵 서울로 올라왔지만, 무일푼 청년의 서울살이는 고됨의 연속이었다. 40년 가까이 식당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으나 다리가 말썽을 부리면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박씨는 “외동딸이라 다른 가족도 없고 부모님이 그립다”며 “목포에 있는 부모님 산소라도 가고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마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은 화창한 날씨였지만,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방문을 걸어잠그고 홀로 1평 남짓한 쪽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소주병이 널브러진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 대신 그저 방문 안의 TV 소리만 들려왔다. 예전에는 골목의 ‘주민사랑방’에서 50여명씩 모여 점심을 먹고는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그런 모습도 사라졌다.
대부분 고령에 건강마저 좋지 않은 이들이 지내는 쪽방촌에서는 혼자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다. 누군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오는 것도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한 쪽방촌 주민은 “열흘에 한 명꼴로 세상을 떠나는 것 같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나도 언젠간 그렇게 가려나 싶다”고 말했다. 인근의 지구대 관계자는 “몸이 아프거나 술에 의존하며 홀로 지내는 사람이 많다 보니 변사 신고가 자주 접수된다”고 전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쪽방촌과 같은 사각지대를 관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하다”며 “이런 소외계층을 위해 정부가 인력과 예산을 확대해 재기를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구성·장한서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