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대선 경선을 시작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일정을 놓고 벌써부터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경선을 연기하자는 제안이 당 일각에서 공개적으로 나오자 다른 쪽에선 ‘원칙론’을 고수하며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당헌·당규상 다음달 예비경선을 시작으로 오는 9월초 대선 후보를 뽑아야 한다. 대선은 내년 3월인데 6개월 전에 뽑는 원칙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대선 경선을 연기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밑에서 군불을 떼던 경선 연기론에 총대를 멘 건 ‘친문’ 전재수 의원이다. 전 의원은 지난 2월 한 방송에 출연해 “정치 일정도 당내 경선 흥행이라든지 또는 더 좋은 민주당 대선 후보를 만들기 위해서 그러한 시간 조정, 시간표 조정 이런 것들은 충분히 논의해서 바꿔볼 필요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기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전 의원이 내세우는 명분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흥행 저조 등이다. 코로나19와의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경선을 치르는 건 ‘민주당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11월쯤이면 정부가 목표로 삼은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는 시기여서 전 의원의 주장과 맥이 닿는 면이 있다.
전 의원은 또 “특정 후보의 입장, 특정 계파의 시각에서 벌어지는 피곤한 논쟁이 아니라 중단없는 개혁과 민생을 위한 민주당의 집권전략 측면에서 대선후보 경선 연기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전 의원의 주장이 단순히 특정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까 나온 우려에서 이를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친문 입장에선 아직 이 지사가 마뜩치 않은 게 있는데 특히 전 의원이 그렇게 나선 건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무죄 판결을 기다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으로 재판 중인 김 지사가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조금 늦더라도 대선 경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의원 외에도 대선 경선을 준비하는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전날 만났는데 일정을 연기하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 수면 아래에서 반발하던 이재명계 공개 반박
현재 당 내에서 경선 연기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쪽은 이재명 경기지사 측이다. 다른 여권 후보들에 비해 이 지사의 지지율이 크게 앞선 입장에서는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민형배 의원은 “이런 논의는 당사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조용하게 진행하면 좋았을 것”이라며 “압박하듯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실익도 없어보인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민 의원은 1년도 안 남은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는 이유로 원칙을 고수하자고 했다. 그는 전 의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 의원은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경선을 하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정치혐오에 무릎 꿇는 자세처럼 보인다”며 “민주당 경선은 시끄러운 싸움판이 아니다. 민주당 경선은 국가의 미래비전을 놓고 경합하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집단면역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경선을 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에는 “코로나19는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는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일종의 ‘상수 위기’라 할 수 있다”며 “가시권에 들어오든 그렇지 않든 ‘종료’ 선언 이전까지 정부여당의 정책기조에 큰 변화를 둘 수 없는 사안이다. 코로나19는 경선의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총선과 재·보궐선거까지 다 치렀는데 대선 경선을 못하는 건 핑계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는 또 ‘국민의힘의 후보경선 과정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모두 아시는 것처럼 정치는 주권자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며 “타 정당과 하는 경쟁이나 싸움도 주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국민의힘이 이전투구 싸움을 시작할 때 민주당은 두 달이나 먼저 오직 주권자 시민들만 바라보며 ‘마음을 얻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스스로 정한 원칙을 쉽게 버리는 정당을 주권자는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헌·당규를 바꿔 서울과 부산에 모두 후보를 냈고, 크게 패배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한 해도 지나지 않아 두 번씩이나 당헌·당규를 바꾸는 정당이라면 주권자 신뢰는 바닥보다 더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