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다시피 음력 사월 초팔일은 부처가 탄생한 날이다. 부처를 이르는 말은 여럿이다. 붓다, 석가, 여래, 세존 등이 다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가 탄생한 날을 기려 절집에서는 색색으로 물들인 연등을 내건다. 이맘때 잎이 파릇하게 돋은 나무들과 공중에 내걸린 연등은 잘 어울린다. 석가탄신일 즈음 연등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온갖 갈애(渴愛)와 사리사욕에서 허덕이는 나 같은 중생에게 붓다는 이념의 푯대이고, 어둠을 밝히는 하나의 등불이라고.
붓다가 태어나기 전 인도 각지에는 숱한 수행자들이 떠돌았다. 세속에서 부귀영화를 좇는 걸 그치고, 우주 만물에 궁극적 물음을 던지며, 수행에 정진하며 극기에 제 몸을 바친 이들을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고 했다. 서기전 6세기쯤 북인도의 카필라바스투에서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도 그 출가사문의 하나였을 것이다. 왕자가 태어나던 날, 몇 가지 길조가 나타났다.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랐다. 아기는 그 연꽃에 올라앉았다. 부왕은 점술가에게서 왕자가 집에 머물면 지혜로운 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할 것이란 말을 듣는다.
왕자는 열네 살 때 마차를 타고 도성의 동문을 통해 산책에 나서 우연히 여러 사람을 만난다. 처음 노인을 만나고, 마부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 노인입니다. 나는 저런 운명을 피할 수 있겠느냐? 아직은 피하지 못하십니다. 다음으로 병자를 만난다. 이 사람은 누구냐? 병든 사람입니다. 나는 저런 운명을 피할 수 있겠느냐? 아직은 피하지 못하십니다. 그 다음으로 장례행렬을 만난다. 저것은 무엇인가? 시체입니다. 나는 저런 운명을 피할 수 있겠느냐? 아직은 피하지 못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탁발승을 만난다. 저 사람은 누구냐? 그는 수행자입니다. 그는 자제심, 근엄한 태도, 인내심, 존재에 대한 동정심을 품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훌륭하구나! 왕자는 감탄하면서 그 말을 세 번이나 외쳤다. 왕자는 부왕에게 산책에서의 일을 고하면서 자신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부왕은 왕자가 출가할 것을 두려워하며 도성 주변에 ‘환락의 정원’을 지어 오관의 즐거움을 주는 일을 밤낮으로 벌이게 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때가 되자 도성을 떠나 출가를 한다.
장석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