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의료기기와 의료용품을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임모(68)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병원들이 어려워지면서 덩달아 경영난을 겪었다. 지난해까지는 충당금으로 연명했지만, 올해부턴 더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급해진 임씨는 지난 3월 인터넷 검색으로 대출중계사이트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한 업체로부터 60만원을 빌렸다. 일주일 뒤 그는 100만원을 갚아야 했다. 상환을 일주일 연기하려면 100만원의 20%인 20만원을 내야 했다. 몇 차례 상환을 연장하던 그는 다른 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첫 번째 대출을 갚았다. 하지만 그곳도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요구했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고금리 대출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임씨는 2∼3개월 만에 12개 업체에서 1000만원가량을 빌렸다. 업체마다 원금의 2배에서 3배까지, 총 2500만원가량을 갚아야 했다.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욕설과 협박을 동원한 불법 추심 때문에 정신적인 피해도 컸다.
정부가 대통령 공약대로 다시 한 번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한다. 임씨처럼 저신용자로 전락한 뒤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착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지만, 부작용을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7월7일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현행 24%에서 20%로 인하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 당시 20%를 넘는 금리를 이용하던 239만명 중 208만명(87%)의 이자 부담이 매년 4830억원 경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약 3만9000명은 불법사금융에 내몰릴 수 있다고 봤다.
금융당국 발표에 대해 학계에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소비자경제학)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최고금리 인하 이후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흘러들어갈 저신용자를 57만명 수준으로 추정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전체 600만명 규모인 저신용자의 수요 수준을 최대로 감안하면 300만명까지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4만명 정도로 관측하는 정부와 학계 전문가들의 간극이 상당하다.
2018년 최고금리 인하(27.9%→24%) 당시에도 이러한 우려가 나온 바 있다. 당시 약 81.4%는 이자 경감 효과를 누렸지만, 나머지는 제도권 금융의 대출을 더는 이용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햇살론17’을 ‘햇살론15’로 개편하는 등 정책서민금융 확충에 나섰지만, 저신용자들에게 문턱이 높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도권 금융의 ‘최후 보루’인 대부업계의 위기감도 팽배하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가 4%포인트 인하하는 만큼 대부 중개 수수료 유도 및 조달금리 인센티브 제공 등을 추진하는 지원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대부업계는 존속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대출심사가 까다로워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수익성 악화로 담보대출 비중을 키우는 대부업체가 늘며 신용대출 자체가 줄어든다”며 “주요 업체들의 연이은 이탈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더는 이 일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불법사금융을 막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총력 대응도 이뤄지고 있지만,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불법대부업체와 보이스피싱 일당 등의 수법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물론 각 부처 및 관련 기관 등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수집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일반적인 고신용자들이야 최고금리 인하와 별 관계가 없겠지만, 정작 정책의 효과를 느껴야 할 중·저신용자들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며 “정책의 부작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곪아 터져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준영·김희원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