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형들만 바라보던 형바보였던 막내. 아픈 아버지를 먼저 걱정했고, 엄마를 대신해 살림을 기꺼이 돕던 아들. 먼저 말을 걸어주며 다가와 준 친구. 노래를 사랑한 너는 다정한 아이였다. 유엽아, 엄마는 늘 너를 응원했다. 항상 보고 싶은 내 동생, 사랑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영원한 삼형제다.’ 고 정유엽(2002.12.20.~2020.3.18.)의 유가족.
‘코로나 위험하다고 사람 많은 곳에서 일하지 말라며 걱정하시던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건강하던 아빠가 갑자기 사라졌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보고 싶고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고 최광윤(1966.6.9.~2021.4.2.)의 유가족.
설치미술가 박혜수 작가의 작품 ‘늦은 배웅’에 적혀 있는 문구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전염병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 가족 대신 그 죽음을 지켜본 요양보호사, 간호사, 장례지도사 등이 직접 쓴 ‘부고’다. ‘확진자 ○○명, 사망자 ○○명.’ 매일 미디어를 통해 마치 무슨 실적이라도 되는 듯 오르고 내리는 숫자만 접하며 무감각해져 있던 마음을 깨운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최근 시작된 전시 ‘이토록 아름다운’은 전염병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추모하고 남은 사람들의 상실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됐다. 강태훈, 염지혜, 박혜수, 다비드 클레르부, 휘도 판 데어 베르베 등 국내외 현대미술가 11명의 작품 5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늦은 배웅’은 작가와 미술관, 부산일보가 함께 진행하는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박혜수 작가와 함께 전시 기획을 맡은 박진희 학예연구사, 미술관을 취재하던 부산일보사의 오금아 기자가 함께 아이디어를 냈다. 부산 지역 시민들의 사연을 받아 작가는 작품을 만들었고 지역신문사는 1면과 부고란을 내놨다. 슬픔 속에서도 아름다운 한걸음 내디뎌야 하는 예술가의 의무와 저널리즘의 공적 책무가 전시에 녹았다. 지난해 코로나 발병 이후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은 뒤늦게 미술관에서, 또는 지상(紙上)의 장례를 통해 그들을 추모할 수 있게 됐다.
박 학예사는 “미술관에 오셔서 작품 앞에서 우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그간 사망자들이 비닐에 싸여 화장터로 바로 가면서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한 분들, 주변 시선을 걱정해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분들이 많다”며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충분히 갖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눈물을 흐르게 한 것은 전시 중반에 놓인 애도 프로젝트임이 틀림없지만, 시작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놓쳐선 안 될 작품들이다. 모든 작품이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드라마처럼 놓여 정화의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의 시작점은 디스트릭트의 미디어설치 작품 ‘스태리 비치’. 지난해 여름 국제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일 때는 코로나로 답답한 일상 속에 도심 속 시원한 바다를 선사하겠다는 의도로 작품이 공개됐다. 방탄소년단 리더 알엠(RM)이 방문해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뒤엔 사람이 몰려 두세 시간 줄을 서야 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예술이기보다는 상업적 문화상품이라는 평과 새로운 시도의 예술작품이라는 평이 엇갈렸다. 하지만 이제는 이견이 없을 최적의 의미를 부여받은 모습이다. 음향이 바뀌고, ‘황홀과 익사 사이’ 부제가 붙은 작품으로 다시 제작됐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또 기술과 자본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을 욕망하면서도 그에 압도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전시를 끝맺는 작품은 ‘No. 8 모든 것은 잘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10분 10초 길이의 영상이다. 거대한 쇄빙선이 느리지만 조금씩 얼음을 깨나가고, 그 앞에서 한 사람이 얼어붙은 수면 위를 멈추지 않고 걷는다. 이 남자는 인간으로서 극한의 체험을 퍼포먼스로 보여온 네덜란드 출신의 휘도 판 데어 베르베이자 이 작품을 만든 당사자다. 2007년 핀란드의 보트니아 만에서 시도한 이 퍼포먼스는 물론 우연히 벌어졌다면 위험천만한 상황이지만, 작가가 선장과 무전 교신하며 속도를 조절해 쇄빙선에 앞장서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남겼다. 인간 앞의 거대한 자연의 힘,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인간의 시도가 서로 싸우지도, 대립하지도 않으면서 나아가는 장면이 숭고한 아름다움, 낙관, 희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팬데믹이라는 시대의 트라우마를 겪어내고 있는 관람객들도 그처럼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9월 12일까지.
부산=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