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 이선호씨 죽음, 이대로 묻혀선 안돼요”

파견업체 소속 알바 23살 청년
컨테이너 청소 중 날개 깔려 숨져
25일 지나도록 진상 규명 없어
“관심 가져야” SNS 추모 잇따라
17일 경기 평택시 평택역 광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씨 분향소를 찾은 시민 사이로 고인의 영정이 보이고 있다. 평택=뉴스1

“어린 것이 부모 고생 덜어주려다….”

 

18일 경기 평택시 평택역 광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23)씨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 이모(55)씨는 고인의 앳된 얼굴이 담긴 영정사진을 한참 지켜보며 안타까운 듯 혼잣말을 했다. 대학생이던 고인은 지난달 22일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평택항 부두 화물 컨테이너 날개 아래에서 나뭇조각 등을 치우는 작업을 하다가 300㎏에 달하는 날개에 깔려 숨졌다.

 

분향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는 이씨는 “내 자식들하고 같은 나이인데, 사고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착잡해서 들렀다”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애들이 자꾸 이런 일을 겪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강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실종돼 시신으로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 사건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이씨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전날 차려진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고인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공모(21)씨는 “일당 10만원을 벌어보려다 이런 일을 겪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며 “그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모(28)씨는 “뉴스에서 사고 당시 영상을 본 뒤로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며 “비슷한 나이인데 세상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떠난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파견업체 노동자의 사고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씨처럼 파견업체에 소속돼 있다는 김모(28)씨는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비보를 접할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우리가 노동자라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건가 싶다”고 말했다. 한창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노동안전부장은 “평택에는 고인과 같은 파견업체에서 일하는 시민들이 많아 더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반복되는 사고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앞 광장에서 열린 고(故) 이선호 씨 산재사망 책임자처벌 진상규명 촉구 시민분향소 설치 기자회견에서 관계자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고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고인이 사망한 지 25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안전에 대한 투자도 없고,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과 정부기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지 않는다면, 누구든 오늘 아니면 내일 당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이씨의 빈소를 직접 찾아 유족을 위로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씨 사례 등 산업재해 사망사고 문제를 언급하며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 현장에서 답을 찾아 주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산재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시행돼도 허점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는 “이씨 사고의 경우 시설 소유주와 컨테이너 소유주, 컨테이너 운영업체, 인력 공급업체가 제각각”이라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에 대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했을 뿐, 현장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아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고 이선호군 추모문화제 참석한 시민들이 컨테이너모형에 장미꽃을 놓으며 추모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또 법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지만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규모 사업장은 법 적용을 하지 않거나(5인 미만) 2024년부터(50인 미만) 적용키로 해 논란이 됐다.

 

권구성·이지안 기자, 평택=구현모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