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식당 찾아 삼만리… 일회용 포장재 피할 길 없어 ‘ㅠㅠ’ [S 스토리-환경 생각하는 삶… ‘제비족’ 체험기]

열흘간의 험난한 체험기

“점심만은 비건식” 당차게 나섰지만
사흘 연속 ‘채식버거’로 간신히 해결
육류 성분 있나 살피다 눈총받기도

마트·편의점 제품 대부분 비닐 포장
재활용 재질 아닌 명함에 골치 앓다
“사진 찍어가시면 안 될까요” 부탁도

텀블러 한 개와 다회용 반찬통 두 개, 손수건 하나.

 

‘제비(제로 웨이스트+비건)족’이 되기 위한 준비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눈에 보이는 준비물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준비물. ‘굳은 결심’과 ‘많은 정보’였다. 평범하게 먹고 평범하게 버리는 일상을 살던 기자에게 쓰레기와 고기를 끊는 일은 녹록잖은 도전이었다.

 

기자는 지난 10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쓰레기 없는 삶인 ‘제로 웨이스트’와 고기는 물론 우유·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비건’을 동시에 실천하는 제비족으로 살아봤다. 지난 3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진행한 ‘제비의 삶’ 캠페인 후기를 접하고 ‘정말 쓰레기와 고기 없는 삶이 가능할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열흘간 쓰레기는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매일 점심 한끼는 비건식으로 먹었다.

 

‘이 정도면 한 달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시작은 호기로웠다. 도전하기 전에 쓰레기 없이 물건을 파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미리 검색해 두고, 채식주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채식 식당 위치도 확인해 뒀다. 철저히 대비했으니 순조롭게 체험을 끝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나 삶에서 무언가를 덜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치 않은 일회용 컵에 ‘좌절’… 채식 식당 찾아 삼만리

 

자신감은 첫날부터 희미해졌다. 의식하지 못하던 곳에서 원치 않는 쓰레기가 쏟아졌다. 모든 식음료는 다회용기에 담고 종이냅킨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첫날 오전 들어간 카페에서 곧바로 무너졌다. ‘카페 안에서 마시겠다’는 말과 함께 주문한 커피는 일회용 컵에 담겨 나왔다. 카페 안에서 마신다고 하면 당연히 머그잔에 줄 거라 넘겨짚은 탓이었다. ‘텀블러를 내밀 걸…’ 때늦은 후회와 함께 일회용 컵 쓰레기 하나가 적립됐다.

20일 서울 마포구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에서 기자가 재활용 유리병에 세탁세제를 담고 있다.

비닐 포장도 문제였다. 다회용기를 가지고 가면 쉽게 음식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플라스틱 포장재에 담겨 판매돼 쓰레기를 피할 수 없는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음식을 주문한 뒤 준비한 다회용기를 꺼내기도 전 비닐 포장에 담아 건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예상치 못한 문제도 있었다. 명함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직업 특성상 사람을 만나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다반사인데 명함은 혼합 재질로 된 경우가 많아 재활용이 어렵다. 고심 끝에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남은 명함이 한 장밖에 없으니 사진을 찍어가시면 어떻겠냐’고 말하며 양해를 구했다. 떨떠름하게 보는 이들도 있어 말하는 순간에는 잠시 머쓱했지만 쓰레기를 줄였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열흘간 점심 한끼는 반드시 채식으로 했다. ‘채식 식당에서 사 먹으면 쉽겠지’란 생각이 ‘채식 식당이 이렇게 없나’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앱을 활용해 주변 채식 식당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용자 제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보가 완벽하지 않았다. 채식 식당이라는 정보를 보고 먼 길을 걸어 찾아간 식당이 비건 메뉴가 아니어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마땅한 채식 식당을 찾지 못해 사흘 연속 패스트푸드점의 채식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물론 햄버거 포장 종이가 쓰레기로 나오는 건 막지 못했다.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 식생활을 동시에 수행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20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근처의 한 만둣집에서 기자가 갈비만두를 준비해간 반찬통에 담아가고 있다.

◆쓰레기·채식 선택권 없어 갈 길 먼 ‘제비의 삶’

 

비록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남긴 것도 있었다. 제비족 도전 이전에는 하루 평균 3개의 일회용 종이컵과 1∼2개의 플라스틱 물병, 여러 장의 종이냅킨을 소비했다. 하지만 도전 기간에 일회용 컵 약 30개, 플라스틱 물병 10여개, 수십장의 종이냅킨을 아꼈다. 화장품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기성제품 대신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서 리필형과 포장이 필요 없는 비누 형태로 구매해 쓰레기를 줄였다. 지구 환경 개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이고 고기를 먹지 않기로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점이 그랬다. 일반 마트와 편의점 제품은 대부분 재활용도 되지 않는 포장재에 둘러싸여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면 묻지 않고 재빨리 비닐이나 스티로폼 포장을 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식당에서는 성분이 모두 표기되지 않은 메뉴판 탓에 육류가 들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려다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쓰레기나 비닐 포장이 없는, 고기가 없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채식 식당에서 팔고 있는 묵은지두부롤과 버섯두유크림파스타. 하상윤 기자

◆심각해지는 환경문제에 늘어나는 제비족

 

이처럼 불편한 점이 많음에도 제비족의 삶을 실천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우리 국민 한 명이 하루에 버리는 생활쓰레기는 1.09㎏이다. 1년에 연간 약 398㎏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지속하면서 생활쓰레기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온라인 주문으로 이뤄지는 음식서비스 거래액이 17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8.6% 늘었다고 밝혔다. 온라인 음식 주문이 늘어났다는 건 포장쓰레기도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20일 서울 마포구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하상윤 기자

육류 소비로 인한 환경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전 세계인이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는다면 전체 온실가스 371억t(2018년 기준)의 약 22%인 80억t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국민의 육류 소비량은 매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9년간 한국 국민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매년 평균 4.2%씩 증가했다. 1980년 11.3㎏이던 육류 소비량은 2019년 54.6㎏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1년째 제비족 생활을 하는 이재복(42)씨는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쓰레기부터 줄이기 시작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회용품 사용이 늘며 문제가 더 커졌는데 사람들이 잘 인지를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비족 생활 2년째인 이한님(28)씨는 “환경을 생각해 제비족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개인이 노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며 “환경문제는 소비자만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국가 정책과 기업의 판매·공급시스템 등이 함께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 쓰레기를 덜 만들고 고기를 덜 먹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비닐 안 쓰고 고기 안 먹을 ‘선택권’ 보장돼야” 

서울환경운동연합 신우용 사무처장. 이재문기자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가 환경문제에 여러 목소리를 내면서 이들의 메시지를 반영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이들의 소통력을 활용하면 더 폭발적인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생태·환경보호 시민단체 서울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합) 신우용 사무처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MZ세대가 환경문제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캠페인의 기획과 활동 등을 20대 청년들에게 맡겼더니 곳곳에서 새로운 발견과 변화가 나타났다”며 “아직은 ‘제비(제로 웨이스트+비건)’의 삶을 살기에 사회적 여건과 인식이 부족하지만 젊은 세대가 결집해 목소리를 낸다면 이 문제들이 사회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3월 환경연합 소속 20대 인턴 2명이 기획한 ‘제비의 삶’ 캠페인은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4주간 쓰레기를 줄이고 채식을 하는 캠페인에 1300여명이 참여한 것이다. 신 처장은 “제로 웨이스트에 채식주의까지 함께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할 줄 몰랐다”며 “시민 참여가 제도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는 만큼 높은 참여도가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민의식과 달리 정치권과 재계의 변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신 처장은 “시민 참여와 비교해 정치권과 재계의 변화는 너무 느리다”며 “제도권의 인식 변화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일 서울 마포구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하상윤 기자

그는 일상에서 플라스틱을 안 쓰고 고기를 안 먹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채식을 하는 것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신 처장은 “현재 제품 생산과 유통 과정은 플라스틱이 넘쳐난다. 기업들이 플라스틱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제어하지 않으니 소비자들이 노력해도 줄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장식 축산 역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만큼 미래세대에게는 고기를 먹지 않거나 덜 먹는 것을 고려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다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게 신 처장의 생각이다. 그는 “고기를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안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선택권을 줘야 한다”며 “지금은 식당이나 급식 등에서 고기를 피하기 어려워 선택권이 아주 좁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처장은 “제로 웨이스트와 채식은 본인과 공동체 모두를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며 “제로 웨이스트와 채식에 도전하는 것이 유난이 아닌 ‘기본값’인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한·박지원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