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마름을 달래고 모든 존재에게, 힘과 원기를 주신 세상의 모든 물에게 감사합니다. 우리는 물의 힘이 폭포와 비, 안개와 개울, 강과 바다, 눈과 얼음의 형태로 나타남을 압니다. 우리는 물이 아직 여기에 있으며, 나머지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모인 하우데노사우니 연맹의 학교에서 하는 감사 연설이다. 이 학교는 매주 첫 시간을 이와 같은 감사와 함께 시작한다. 감사 대상은 물만이 아니다. 대지, 해, 달, 별, 바람, 작물, 약초, 나무, 새, 조물주 등 자연의 모든 것이다.
‘향모를 땋으며’(에이도스)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족 출신의 식물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감사할 줄 아는 인간, 즉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주변에서 감사할 것을 찾아내고, 어떻게 보답할까를 고민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자연의 혜택에 대해서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은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과 자연의 정서적 관계를 한층 친밀하고 끈끈하게 만든다.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은 자연을 오염시켜 망가뜨리거나 남용해서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제목의 향모는 북미 지역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포타와토미족의 창조신화에 따르면, 이 풀은 천지개벽 후 대지에서 자라난 최초의 식물이다. 그들은 향모를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의 ‘윙가슈크’라고 부르면서 성스러운 풀로 여긴다.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호혜와 공존, 존경과 감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계관이 이 말에 압축되어 있다. 따라서 ‘향모를 땋으며’라는 제목은 오늘날 전 지구의 생명체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서구문명의 이야기 대신에 토박이 지혜와 현대적 지식, 즉 영성과 과학을 하나로 땋아서 생태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저자의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윈디고’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윈디고는 한겨울 눈보라 속을 굶주린 채 떠돌면서 인간을 잡아먹는 아귀로,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어두운 탐욕을 뜻한다. 윈디고에 잡아먹힌 인간은 포만감을 모르고 영원히 굶주림과 공허에 시달린다.
자본주의는 현대의 윈디고다. 희소성의 경제인 자본주의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통해 번성하기 때문이다. 희소한 것들은 얻는 순간 더 이상 희소하지 않으므로,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을 만족을 모르는 존재로 길들여 윈디고의 노예로 만든다. 물건을 더 많이 사고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할수록, 우리는 새로운 욕구에 굶주리는 윈디고가 된다. 생태계 자체를 파괴해서 기후 재앙이 일어날 때까지 지구를 착취한 인간의 무분별은 여기로부터 나왔다.
감사는 자연의 풍요로운 선물을 인정한다. 우리한테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감사의 교육은 작은 것에서도 무한한 충만을 느끼는 인간을 길러냄으로써 우리가 허기진 윈디고가 되지 않도록 만든다. “절대로 절반 이상 취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식물이 다시 나눠 줄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이것이 지구를 구하는 새로운 경제의 명령이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만끽하는 동시에 그것이 항상 곁에 공존하도록 아끼면서 누릴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 새로운 문명의 출발점이다. 불만의 경제에서 감사의 경제로, 문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