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슬픔과 분노로 흘려 보냈던 수많은 산재 사고가 제 친구까지 죽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사회를 끝내주세요.”
24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개찰구 앞. 김벼리(23)씨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친구 이선호(23)씨는 지난달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 숨졌다. 이날 김씨가 선 곳은 5년 전 ‘구의역 김군’이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다 숨진 곳이다. 김씨는 “또래였던 김군의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 아파했던 제가 5년 뒤 같은 이유로 친구를 잃고 이 자리에 와 있다”며 “김군도 제 친구 선호도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죽었다. 오늘도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간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구의역 사고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제정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50인 이하 사업장 유예, 5인 이하 사업장 제외 등 소규모 사업장에 책임을 묻지 않고 처벌 조항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며 제대로 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현미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죽기 위해 일터를 나가는 노동자는 없다”며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산업재해 노동자들이 매년 2000여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군과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며칠 전 평택항에서 세상을 뜬 이선호씨 등 반복되는 청년들의 죽음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용균씨의 동료 정세일씨는 “용균이가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현장에서 바뀐 것은 현장 조명 추가와 컨베이어 안전펜스 설치뿐”이라며 “안전·고용·처우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벼리씨 역시 “선호 일이 알려지고 수많은 정치인이 빈소를 찾아 앞다퉈 선호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20명이 넘는 사람이 산재로 사망했다”며 “같은 이유로 사람이 계속 죽는데 현장은 바뀌질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재 사고·사망을 막기 위해 대단한 기술력과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기본적인 안전관리수칙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유지혜·구현모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