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직후 가택연금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모습이 113일 만에 공개됐다. 수도 네피도의 특별법정에서 열린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등 범죄 혐의 재판을 통해서다.
25일 외신에 따르면 수치 국가고문의 첫 공판이 24일(현지시간) 진행됐다. 군부는 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수치 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을 가택연금했다. 이후 군부 지배 하에 있는 미얀마 검경은 수치 고문을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현지 검찰에 따르면 수치 고문은 불법 수입한 무전기를 소지·사용한 수출입관리법 위반 혐의, 지난해 11월 총선 과정에서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어긴 자연재해관리법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2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그동안의 공판 준비절차는 코로나19 방역 등을 의식해 화상으로만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 미얀마 법원이 대면 심문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나섬에 따라 이날 오프라인 법정에 수치 고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자신의 변호인단과도 화상으로만 접촉해 온 수치 고문은 이날에야 비로소 변호인과 직접 접견했다.
수치 고문의 법정 출석, 그리고 공판 과정은 외신 등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채 이뤄졌다. 다만 변호인단을 이끄는 킨 마웅 조는 수치 고문을 집적 접견한 뒤 언론과 만나 “수치 고문이 건강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치 고문은 현재 자신이 연금된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는 수치 고문이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dpa 통신은 “수치 고문은 지금 미얀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이후 벌어진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 그에 대한 군부와 경찰의 잔혹한 유혈진압,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등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군경의 총격 등으로 미얀마에선 민간인 8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수치 고문은 접견 과정에서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은 국민을 위해 창당됐기 때문에 국민이 있는 한 존재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수치가 이끄는 NLD은 지난해 11월 총선에 압승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얀마의 집권당 노릇을 했다. 최근 미얀마 군사정권의 선관위는 “지난해 11월 총선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NLD의 강제해산 절차에 돌입하기 위한 수순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치 고문이 풀려나더라도 정치적 기반을 제거해버림으로써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