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벨라루스 민스크 공항으로 방향을 돌려) 착륙한 뒤에도 승객들은 30분 동안 내리지를 못했어요. 폭탄이 설치돼 있었다면서 왜 대피시키지 않았을까요.”
강제 착륙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출발 11시간 만에 원래 목적지 리투아니아에 도착한 사울류스 다나우스카스는 24일(현지시간) 현지 온라인 매체 델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불만을 터트렸다. 여객기는 민스크에 내린 뒤 소련 시절을 연상케 하는 녹색 제복을 입은 관료들과 개, 소방관 등에 둘러싸였다. 다나우스카스는 “그들(관료 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반체제 인사 구금을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해 외국 국적 항공기를 자국에 강제 착륙시킨 벨라루스에 대해 서방 국가들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이번 일을 ‘하이재킹’(공중납치)으로 규정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벨라루스 국적 여객기의 역내 영공 비행 및 공항 접근을 금지하는 경제제재안에 합의했다. 또 역내 항공사들에 벨라루스 상공 비행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독재를 도운 관료·정치인·기업에 대한 추가 제재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그들이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가지고 러시안룰렛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충격적(outrageous) 사건”이라고 강력 규탄하면서 “EU의 제재 결정을 환영하며 미국 역시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방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벨라루스의 몇 안 되는 동맹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흥분해서 성급하게 평가하지 말자”고 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서 “서방이 벨라루스 영공에서 일어난 일을 ‘충격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조롱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2013년 국가 기밀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탑승했다고 판단한 볼리비아 대통령 전용기를 오스트리아에 멈춰 세운 사례를 들며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벨라루스 당국은 강제 착륙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위협 탓으로 돌리며 기존 ‘폭발 위험’ 주장을 이어갔다. 하마스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벨라루스 측 주장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