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의 제철은 한겨울, 메밀국수가 가장 인기가 많은 계절은 한여름이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들기름 막국수의 인기 고공행진은 올해 이른 봄부터 지난날의 평양냉면 인기마저 떠올리게 한다. 이런 기세 때문인지 요즘은 음식점이 새로 생길 때 장르 불문 들기름을 이용한 메뉴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핫템’이 됐다. 김새봄의 열 번째 먹킷리스트는 들기름의 인기마저 견인한 들기름 막국수다.
# 줄기상추의 아삭한 식감과 수제 간장의 절묘한 조화
‘유천냉면’은 서울의 3대 냉면집이라고 불릴 만큼 오래전부터 인기가 많은 곳이다. 1982년 주택가 가정집(옛 유천파크멘션)에서 상호 없이 냉면과 보리밥을 팔던 식당에서 시작해 손님들이 부르던 이름, ‘유천칡냉면’으로 1987년 상호가 붙여지게 된다. 물냉면에 최초로 양념장을 넣은 곳으로도 유명하단다. 시그니처는 비빔냉면으로 현재까지 인기가 높다. 요즘 유천냉면엔 들기름 메밀면이 떠오르는 핫템이다. 유천냉면 스타일은 들깨에 팍팍 무친 줄기상추가 포인트. 특히 직접 만든 간장과 직접 짠 들기름을 함께 내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격이 상당할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이름난 작가들의 애정 국수맛집
강원도 횡성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가다 보면 식당이 과연 이런 곳에 있을까 의문이 들 때쯤 나타나는 ‘삼군리 메밀촌’은 들기름 막국수에서 빠질 수 없다. 15년 전부터 이름난 작가들이 애정하는 식당으로 유명했다. 8000원이라는 가격에 손수 쑨 메밀묵, 메밀전까지 서비스로 주는 착한 가격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100% 깐메밀로 순면을 만들어 쓰는, 옛날 방식 그대로 메밀을 불리고 내려서 만든다. 이 때문에 메밀 향은 진하고 후드득 끊어진다.
순메밀면에 투박하게 김가루와 깨를 솔솔 뿌리고, 아삭거리는 오이가 보조 역할을 단단히 하는 기본 막국수에 들기름을 부어 비벼 먹는 방식이다. 여기에 함께 마련된 간장, 설탕, 고추장, 잘게 썬 김치로 나만의 ‘DIY 막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김가루를 수북하게 얹은 비주얼 때문에 지금의 인기 있는 들기름 막국수 비주얼의 유래가 여기에서 왔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에는 동치미 육수를 부어 다양한 재료와 함께 모든 재료들을 한데 어우르는데, 각자 개성이 선명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화합의 맛이다.
# 들기름막국수의 대유행을 견인한 주인공
“1시간밖에 안 기다렸어? 나도 그때 가야겠다.” 흔한 ‘고기리막국수’ 팬들의 대화다. 경기 용인시 고기동에 위치한 고기리막국수는 2∼3시간 웨이팅을 기본적으로 각오해야 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주차장만 4개, 가게 오픈 30분 전부터 문정성시를 이루는 어마어마한 대기 행렬은 감탄을 자아낸다. 원래 고기리막국수의 시작은 고기동에 위치한 ‘장원막국수’였다. 횡성에 있는 유명 막국수의 분점으로 출발해 고기리막국수로 재탄생했다.
독자적인 개성과 매력을 개발해 현재의 들기름 막국수 대란을 몰고 온 장본인이다. 원래 들기름 막국수는 메뉴판에는 없는, 단골들만 알음알음 주문하는 ‘덕심’ 자극 메뉴였다. 하지만 점차 이 메뉴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나중엔 정식 메뉴이자 필수 주문 메뉴로 자리 잡게 됐다. 산에 눈이 수북하게 쌓인 듯, 청순한 모습의 들기름 막국수 비주얼 포인트인 김가루는 파래김을 곱게 부수어 완성한다. 동반된 깻가루가 은은한 감칠맛을 함께 지탱해 준다. 고기리막국수의 메밀면은 햇메밀 100%로 만들어 수분감이 가득하면서 퓨어하고, 툭툭 끊기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 국수가 서빙될 때 직원이 “비비지 말고 그대로 집어 드시라”고 알리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면을 최대한 흩뜨리지 않고 김가루와 함께 오롯이 입에 가져다주어야 국수의 진짜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테이블마다 놓인 햇메밀을 구경하며 국수를 먹다 보면 메밀차를 마시는 듯, 메밀 향기가 더욱 깊게 입속에 파고든다. 직접 짠 들기름의 진한 향기는 오감을 행복하게 한다. 국수를 반 이상 먹으면 육수를 부어 면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육수를 부음과 동시에 들기름 향이 코끝을 또다시 훅 치고 올라온다. 육수 덕에 혀끝으로 직접 다가온 파래김 풍미를 느끼며 국물을 들이마시다 보면 일타쌍피, 한 번에 두 가지 메뉴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김새봄 푸드칼럼니스트 spring586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