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은 이른바 ‘이대남’으로 불리는 20대 남성의 표심을 분석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앞서 이 세대는 오랫동안 진보 성향으로 여겨졌으나 현 이대남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크게 선회한 것이 표로 드러났고, 이렇게 바뀐 원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 이대남의 특징 중 가장 부각되는 게 젠더 의식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후보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가 최근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벌였던 ‘페미니즘 설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난달 방송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정권의 친페미니즘 행보가 이전 정부보다 두드러진 탓에 20대 남성의 불만이 쌓였다는 게 이 후보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여성 할당제 등 역차별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에 진 전 교수는 20대 남성의 표심 변화와 페미니즘은 무관하며, 정치권에서 이대남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반페미니즘 정서를 부추겨선 안 된다고 맞섰습니다.
‘이대남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이 후보는 당대표 중간경선(컷오프)을 지지율 1위로 통과한 데 이어 여론조사에서도 선수를 놓치지 않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대 남성 유권자를 사로잡으려고 반페미니즘 정책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긴 하나 그의 목소리에 더욱 이목이 쏠리는 현실입니다.
◆‘이대남’은 ‘반페미’? 성평등 의식 모든 세대 중 ‘최상위’
진작 2017년부터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과 젠더 의식을 연구해 집대성한 논문이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최종숙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3월 계간 학회지 ‘경제와 사회’에 발표한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20대 남성을 ‘성평등 의식은 높으면서 반페미니즘 정서는 강한 역설적인 세대’라고 분석했습니다.
최 연구원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국민적인 젠더 갈등이 깊어졌던 이듬해부터 20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젠더 의식을 조사했습니다.
관련 설문에서 ‘남성 육아’와 ‘여성 직장상사’, ‘여성의 사회문화생활 주도’ 등 항목별로 의견을 물어 성평등 의식을 점수로 측정했습니다. 성평등 의식이 높을수록 남녀를 동등하게 여긴다는 뜻이고, 더 넓게 해석하면 특정 성에 대한 차별적 행동에 반대하는 정도가 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 점수는 남녀 모든 세대를 통틀어 20대 여성에 이어 두번째로 높게 나왔습니다. 모든 항목에서 20대 여성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30대 여성보다 소폭 높았습니다.
논문에 인용된 다른 연구자의 세대별 젠더 의식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2018년 진행된 설문 분석에서 20대 남성은 ‘전통적 남성성’을 모든 세대 남성 중 가장 적게 띄면서 ‘비전통적 남성성’은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별에 따라 집단과 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다르다’와 같은 고정관념에서 가장 멀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는 전체 남성 중 가장 두드려졌습니다.
또다른 논문을 살펴보면 2019년 설문조사 결과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 등의 문항에 긍정적으로 답변한 20대 초반 남성의 비율이 80%대로 20∼30대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습니다.
이를 두고 최 연구원은 “성평등 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은 20대 남성이 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대 남녀, 똑같이 성평등의식 높다는 공통점에 주목해야
최 연구원이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옹호하기 위해 이 논문을 쓴 것은 아닙니다.
그는 논문 도입부에서 20대 남성을 ‘반페미니스트’로 단정지은 선행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20대 여성을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집단이기주의자’라고 점찍고 공격하는 태도 역시 매우 경계했습니다.
“(정치권에서) 20대 ‘남성’의 지지율만 하락하면 그것이 젠더 간 갈등문제로 해석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연구를 시작한 배경이었다고 최 연구원은 전했습니다.
정치권이 이대남에 구애하기 위해 남녀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현시점에 새겨볼만 한 지적입니다.
세계일보 영상팀은 최 연구원을 직접 만나 지난해 논문 발표 후 다시 정치권 화두로 떠오른 ‘이대남 현상’을 함께 진단했습니다.
그는 “20대 남녀는 성평등 의식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육아 등 일상적인 문제에선 남녀가 다투지 않고 합의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작금의 페미니즘 논쟁에 대한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글·영상=신성철 기자 s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