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개발은 모두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슈이다. 그만큼 배경과 전환과정의 위험에 대해 다각도의 검토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통합환경에서 신흥국가들의 CBDC는 금융 주권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자본 유출입의 확대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반면 가상자산거래소를 중심으로 민간 스테이블(달러화 가치에 고정된 가상화폐) 코인을 활용한 국경 간 자금이동이 증가하고 있어 CBDC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 있는 여건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내부적 효율성과 대외적 상호운용성 간의 상충관계가 크기 때문에 양자 간의 선택이 쉽지 않다. 안정을 우선하면 시장의 확장성이 저하되고 개방을 우선하면 규제차익을 노린 자본 흐름 확대로 사회구성원들 간의 조세 차원 형평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앙화된 법적 신뢰주체와 시스템은 과도할 정도의 규제로 인해 금융 포용성 제고에 쉽게 나서기도 어렵다. 한편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어진 시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금융서비스는 제대로 된 규제체계의 인식을 넘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언택트 경제의 정착과 더불어 우리는 자산범주의 구분이 급속도로 희미해지는 디지털 전환의 이상점(singularity)에 접근해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의 밀착형 서비스로 무장한 빅 테크(대형 기술)에 비해 시장과 한발 떨어져 있는 법적 신뢰주체는 상대적 열세에 놓여 있다. 동시에 탈중앙화금융(DeFi)시장에서는 거래당사자들끼리 합의한 암호적 원리로 거래소 개입 없이 교환하는 방식마저 퍼지고 있다. 고도의 복잡하고 신속한 거래가 일상인 환경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화폐의 기능 자체가 사용자들 간의 필요에 맞춰 프로그램될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한 인센티브 구조도 장착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적절한 규제가 없으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결국 가상자산의 출현과 더불어 촉발된 CBDC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발전 속도보다 시장 인프라, 지배구조와 규제체계가 뒤처지면서 생긴 공백을 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상당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견제장치가 없다 보니 정보 비대칭성은 심화하고 기본 상식과 원칙마저 간과되기 일쑤이다. 변화의 주체인 빅 테크 플랫폼은 무한 질주 모드에 진입했으며, 압도적 데이터 역량으로 고객과의 접점을 다각도로 넓혀가고 있다. 경쟁여건을 통해 건전한 시장규율을 지켜나가야 하는 역할 대신 일부 국가는 스스로 디지털 전환의 주도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연 디지털 변화 속에서 민간들의 일상을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디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