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군 부사관 이모 중사 사건과 관련, 공군 초기 대응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적 비난 여론에 직면한 국방부는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대책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늑장보고·매뉴얼 미준수까지… 끊이지 않는 의혹
한편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와 제20전투비행단,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던 국방부 감사관실은 이날부터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센터는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를 국방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센터가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3월 5일. 하지만 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에 보고한 때는 4월6일이었다. 그나마도 사건 경위를 알 수 없는 월간현황보고 형식의 ‘성추행 피해 신고 접수’였다.
국방부 ‘국방 양성평등 지원에 관한 훈령’에는 성폭력 신고 상담 접수 시 국방부 장관이 지정하는 양식에 따라 일선부대 상담관→각 군 본부 양성평등센터→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로 구성된 양성평등 업무계선으로 ‘개요 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될 사건은 개요 보고 후 세부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공군이 국선변호인 선임 관련 국방부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군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여성 피해자에게는 사건처리 관계자(수사관, 군검사, 국선변호사)를 여성으로 우선 배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성 국선변호사가 없으면 군 범죄피해자 국선변호사 예산을 활용, 민간 변호사를 국선변호사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공군은 사건 발생 7일 후인 3월 9일 공군본부 소속 남성 법무관을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이 의원은 “이 중사와 가족 측에 여성 변호인 우선배정 및 민간변호사 지원 제도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유족 측은 이날 오후 이 중사의 첫 국선변호인이었던 A씨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했다.
◆성폭력 대책 잇따라 내놓는 국방부·정치권
국방부는 이날 김성준 인사복지실장을 책임자로 하는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TF)을 구성, 부실한 군 내 성폭력 대응 체계 개선에 착수했다. 8월까지 운영되는 TF는 육·해·공군과 해병대 관계자,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과 여성가족부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지난 3일부터 16일까지 운영되는 성폭력 특별신고 기간에 접수되는 신고를 처리하기 위한 성폭력 신고 특별조치반도 이날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신고 내용 중 형사절차 진행이 필요한 것은 검찰단 전담수사팀이 맡아 수사할 계획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15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으며, 이 가운데 10건은 수사·조사를 할 예정이고, 5건은 상담을 진행한다.
정치권도 관련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참모진과의 회의에서 “최근 군과 관련해 국민이 분노하는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병영문화를 개선할 기구를 설치해 근본적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군 범죄 근절 및 피해자 보호 혁신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국민의힘도 ‘군 성범죄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에만 군사법원 관할권을 인정하고,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국회가 군 인권보호관 설치를 위한 후속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권 등에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진정성 여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특위와 청문회는 정치권에서 늘 만들어내는 뻔한 대책”이라며 “이슈가 커지니 공군참모총장이 물러나긴 했지만, 이 정도 사안이면 보고를 늦게 받았다 하더라도 사단장, 대대장 등 상급 지휘관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옷을 벗게끔 강화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찬·이희진·이도형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