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넘쳐 난다. 저마다 다양한 빛깔로 개성을 뽐내 어느 섬이 최고라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산토리니와 카프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은 우리나라 CF 시원한 음료 광고 때문에 청량한 이미지로 기억을 남겼고, 이탈리아 카프리섬은 같은 이름의 맥주로 친숙하다. 그리고 지중해 햇살을 반사시키며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하얀색 집들이 즐비한 한 장의 사진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미코노스가 있다.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출발한 크루즈가 처음 도착한 기항지, 사진 속 그 모습을 찾아 미코노스를 만난다.
미코노스 항구는 크루즈가 직접 접안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래서 선상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하여 마지막 하부층까지 내려가 걸어서 섬으로 나간다. 항구에서 시내는 그리 멀지 않아, 마을 입구까지 1.5㎞ 정도 거리이다. 크루즈가 섬에 머무는 시간은 3∼4시간 정도로 천천히 둘러보고 차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저 멀리 바다에서 바라본 섬, 항구에 발걸음을 내딛으며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 섬 구석구석 속살을 마주할 예정이다. 여유를 가지고 걸어 마을로 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돌아오는 시간의 여유를 찾기 위해 셔틀버스를 탄다. 크루즈 선상카드를 보여주고 버스에 오르면 된다.
이렇듯 일반적인 방법으로 미코노스를 만날 줄 알았다. 아뿔사! 이번에는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다. 이미 다른 크루즈가 정박해 있어 섬 접안이 불가능하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먼저 도착한 크루즈가 문제가 생겨서인지 교통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크루즈는 텐더보트라고 부르는 작은 배를 이용해 시내와 가까운 항구로 승객들을 실어 나르기로 했단다. 나름 크루즈 여행 재미가 텐더보트에 있어 색다른 경험이지만 지금은 섬에서 다른 일정을 예약해두어 빠듯한 시간에 마음이 급하다. 계획에 없던 텐더보트 이동으로 예상 도착시간보다 지체되어 난감한 상황이 일어났다.
작은 배는 급한 마음을 아는지 파도를 가로지르며 속도를 낸다. 물보라를 맞으며 델로스로 향한다. 크루즈에서 느끼지 못하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가득 품은 지 30여 분. 섬이 보이고 유적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항구에 도착하니 이미 유적지로 향하는 입구는 닫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처량한 눈빛을 보내봐도 유적 관리자는 배에서 내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엄청난 규모의 고대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그 흙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배 위에서 파도 따라 넘실대며 사진만 찍는다. 델로스 유적을 둘러보려면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에 ‘언제 다시 올까’ 라는 생각으로 흙만이라도 밟고 멀리서 눈에 담고 싶었다. 역사 현장에 오롯이 한번 두 발로 서 보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일정은 행운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미코노스에 다시 와야 하는 변명거리가 생겼다. 멀리서 보니 아쉬움이 더욱 크다. 차라리 이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크루즈가 아닌 미코노스에 여러 날 숙박하며 델로스를 위해 온전한 하루를 비워 둘 계획을 결심하지 않았을 테다.
허탈함과 아쉬움을 안고 다시 돌아온 미코노스는 벌써 해가 뉘엿거린다. 한두 사람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하얀 건물들이 어깨동무를 한 듯 빼곡히 붙어있고 다양한 기념품 가게들과 카페, 식당들이 사이사이 자리한다. 온갖 상점들과 게스트하우스들이 얽혀 관광객들을 위한 마을 같다. 하얀 블록을 쌓듯 지어진 아름다운 집들과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거리는 궁금한 마음을 갖게 하며 시선을 고정시킨다. 미로같이 좁은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어느새 마주한 확 트인 바다. 언덕 위 풍차 6기가 늠름하게 서있다. 미코노스의 상징이 되어버린 풍차와 석양을 담으니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조금 전 크루즈 일정으로 놓친 델로스의 아쉬움을 지우고 마법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