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에(그림자 회화)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전’이 10일부터 10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애초 지난해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인해 연기돼 올해 열리게 됐다. 이번 전시는 98세를 맞은 거장의 작품세계가 테마별로 약 160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초 대규모 전시이다.
후지시로 세이지이가 누구인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서 일본의 디즈니라고 찬사를 받으며,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의 순회 전시를 100회 이상 개최한 거장이다. 이번 전시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은 그가 한 평생 추구해온 카게에 세계와 인류에게 전할 사랑과 공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카게에는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 셀로판지를 붙이고, 조명을 스크린에 비추어 색감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장르의 작품을 말한다.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의 밸런스, 오려 붙인 재료, 질감의 투과율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완성하는 카게에는 라이팅 간판광고의 효시이기도 하다. 후지시로 세이지는 이러한 독특한 장르를 이끌어온 독보적 예술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가 된 도쿄에서 당시 청년이었던, 후지시로 세이지는 잿더미가 된 들판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는 골판지와 전구를 사용해 카게에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불에 타버린 일본은 여전히 정전이 잦았고, 그런 속에서 후지시로 세이지는 카게에를 만나 한 줄기 빛을 찾고 아름다움을 찾고, 평화를 찾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작가의 혼이 깃든 초기의 흑백작품 서유기 시리즈부터,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비롯해 일본 상업연극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극단 모쿠바자 시절의 오리지널 캐릭터 캐로용 인형까지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은하철도의 밤’과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는 1959년 초연 이후 각 1000회 이상 상연하며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으로, 후지시로 카게에극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후지시로는 이번 한국전시를 준비하면서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 여기며 혼신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잠자는 숲’은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나는 한국을 잘 알고 싶고, 한국을 더 가까이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특히 작가는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고령임에도 하루 7시간 이상 작품 제작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 전시를 위해 국내 예술인들이 환영을 뜻을 모았다. 철심을 이용해 ‘스티브 잡스’, ‘김구’, ‘마하트마 간디’의 초상을 제작한 한국 작가 김용진이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한 ‘후지시로 세이지의 초상’이 로비에 전시된다. 특히 전시장 내부에서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의 내레이션은 배우 최무성이 담백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그 의미를 더했다.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대표는 “후지시로 세이지의 섬세하고 희망찬 작품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양국 국민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특히 수년 째 냉각상태에 있는 한일 관계 개선에 일조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전시가 동심 가득한 작품세계를 추구해 온 작가의 뜻이 잘 전달되길 바란다. 고령인 후지시로 세이지가 ‘생애 마지막 전시라고 여기며 혼신을 다해 준비한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