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 협력업체에서 고객 응대 업무를 맡고 있는 A씨는 지난 4월 근무지인 콜센터 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데 따른 ‘셧다운’ 이후 회사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방역 차원에서 이뤄진 휴업 기간을 유·무급 휴가가 아닌 전 직원 개인 연차 혹은 대체휴무(대휴) 소진으로 처리한다는 통보였다. A씨 등 다수 직원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측은 “연차나 대휴 소진이 아닌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마켓컬리 콜센터를 운영하는 도급사가 확진자 발생에 따른 셧다운 당시 직원들에게 연차 사용을 강요해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마켓컬리 콜센터를 운영하는 도급사 중 한 곳인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TCK)는 지난 4월13일 직원 중 확진자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한 다음 날인 14일 고객센터 문을 닫고 방역조치를 진행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사업장을 폐쇄하는 경우 사용자는 해당 기간을 무급휴가로 처리할 수 있다. 사업장 폐쇄를 개인 연차 소진으로 처리할 것을 강요하는 건 근로기준법 60조 위반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셧다운 상황에서 개인 의사에 반해 연차 소진을 강요한 것은 위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연차 사용은 근로자가 필요에 따라 신청하는 것이므로 강제한다면 위법”이라며 “연차를 갈음하는 것에 대해 동의서를 일괄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연차 대체가 합법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광훈 노무법인 신영 노무사 역시 “코로나19의 경우 확진자 발생이 회사 귀책사유가 아니라면 유급휴가는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연차 사용 강제는 판례에서도 엄격하게 보고 있어 연차 사용을 강요했다면 무조건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업체에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을 입막음하는 일도 있었다. 팀장급 관리자들과 직원들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에서 일부 직원이 “원해서 쉰 게 아니라 코로나19 때문인데 개인 연차 사용 처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휴나 연차에 손실이 생기는 거라면 앞으로는 증상이 생겨도 아무도 얘기 안 하지 않겠나”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일부 관리자는 발언한 직원의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그만하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관리자에게 개인적으로 전화하도록 하고 이 대화방에서는 더 이상 해당 내용에 대해 글 쓰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TCK 측은 “연차 사용 및 대휴 변경을 권유했지만 강요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원청인 마켓컬리는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건 맞지만 당시 TCK가 마켓컬리 측에는 ‘일부 유급휴가 처리’로 알리고 실제 내부에선 연차소진 방식으로 처리하려 했던 터라 문제를 인지할 수 없었다”며 “원청으로서 도급사 측에 위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고하기는 하지만 하도급법에 의해 도급사 내부 상황까지 저희가 강제적으로 관리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업체뿐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부분이 하도급 업체인 민영 콜센터에서는 방역 관련 각종 부당행위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최근 발간한 ‘코로나19가 콜센터 노동환경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 자동차보험 콜센터는 코로나19 검사로 연차를 사용한 직원에 인센티브 점수를 차감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또 다른 콜센터에서는 이상 증상 발현으로 인한 조기 퇴근 시 조퇴가 아닌 하루 치 연차를 차감했다.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은 “코로나19 등 특수한 상황이 발생해도 콜센터는 원청에 밉보이지 않으려면 가능한 직원들을 못 쉬게 하거나 쉬게 되더라도 유·무급 휴가 대신 연차를 소진하게 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이 때문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일반 기업과 비교해 월등히 열악한 방역 관련 상황을 겪게 된다”며 “실적중심주의 운영으로 원청 눈치를 보게 되는 콜센터 시스템을 개선하고 보다 윤리적인 운영이 이뤄지도록 도급사와 원청이 함께 노력하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지원·이지안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