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사건, 윗선 개입 없었다“… 경찰 발표에도 의혹은 여전

경찰 “청탁·외압 없었다” 결론
李, 증거인멸교사 혐의만 적용
담당수사관 1명 검찰에 송치
각종 의혹 해소 안 돼 비판 여전

운전자 폭행 땐 특가법 원칙 깨고
내사 종결 가능한 폭행 혐의 적용
당초 블랙박스 확인도 뒤늦게 시인
‘李 유력인사인지 몰랐다’ 주장도
진상 조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나
警 “李 사건 관련 비위 엄정 조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뉴시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사건과 관련해 ‘봐주기 수사 및 수사 외압 의혹’을 약 5개월 동안 조사한 경찰이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외압에 따른 조직적 은폐가 아니라 일선 경찰관의 잘못과 제도적 허점이 의혹을 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는 데다 입건됐던 경찰 중 말단 직원만 검찰에 송치하기로 하면서 ‘꼬리 자르기’식 조사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전 차관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조사해 온 서울경찰청 청문·수사합동진상조사단은 9일 폭행 사건을 담당했던 서초경찰서의 서장과 형사과장, 형사팀장을 비롯해 이 전 차관 등 91명을 조사했으나 외압이나 청탁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사건을 담당했던 서초서 수사관 A경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피해자인 택시기사 A씨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지워달라고 부탁한 이 전 차관도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송치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A경사는 지난해 11월 11일 폭행 사건 피해자인 택시기사를 통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지만 ‘못 본 걸로 하겠다’며 압수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이후 다음날 이 전 차관에게 형법상 단순 폭행 혐의를 적용하고 사건을 내사 종결 처리했다. 당시 서초서 팀장·과장, 서장은 진상조사가 시작될 때까지도 “이 전 차관이 평범한 변호사인 줄로만 알았을 뿐 유력인사라는 점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진상조사 과정에서 거짓말로 드러났다. 또 청와대와 법무부 등 유력 기관에서 이 전 차관의 폭행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정황도 파악됐다.(세계일보 6월9일자 11면 참조) 그러나 진상조사 결과는 경찰 내부에서의 ‘윗선 보고’라든가 유력기관의 외압·청탁 정황은 없었으며 A경사의 ‘단독 플레이’였다는 쪽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꼬리자르기식 조사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담당 경찰 1명 ‘윗선’ 없이 개인 일탈 결론… ‘꼬리 자르기’ 비판

 

경찰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사건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약 5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그러나 관련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압 없다’지만… 의심 정황 여전

 

9일 서울경찰청 청문·수사합동진상조사단은 이 전 차관과 서초경찰서의 담당수사관(A경사), 형사팀장·과장, 서장 등 91명의 통화내역 8000여건을 분석했으나 외압·청탁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폭행사건을 내사종결한 것은 A경사 개인의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은 많다. 경찰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A경사와 형사팀장·과장, 서장은 이 전 차관이 유력인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블랙박스 영상에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을 적용해야 할 정황이 담겼고, 현장 출동 경찰도 특가법을 적용했지만 A경사는 영상 존재를 은폐한 뒤 폭행 혐의를 적용, 사건을 종결했다 △유력인사 사건은 상부(서울경찰청)에 보고해야 하지만 보고하지 않았다 △뒤늦게 사건이 논란이 되자 A경사·팀장·과장·서장은 ‘이 전 차관이 유력인사란 점은 몰랐다’고 거짓말했다. 이 전 차관의 신분이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 많은 것이다.

서울경찰청 강일구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 서울경찰청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폭행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경찰들은 왜 거짓말을 했나

 

이 전 차관 폭행사건은 지난해 11월6일 발생했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은 한 달여 지나서다. 논란의 핵심은 서초서가 왜 폭행 혐의를 적용했냐는 것이었다. 통상 정차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면 특가법이 적용된다. 단순폭행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내사 종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찰이 이 전 차관을 봐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 상황을 파악 못했고, 이 전 차관이 유력인사란 점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특히 ‘봐주기 수사’ 논란이 확산할 때 서초서 관계자들이 왜 ‘이 전 차관의 신분을 몰랐었다’고 거짓말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경찰 내부에서도 적지 않다.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이 전 차관의 신분이 정말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이 전 차관이 누구인지 알았지만 절차에 맞게 처리했다’고 밝히면 됐기 때문이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오른쪽)이 변호사 신분이던 지난해 11월6일 택시 기사의 목을 조르는 모습을 블랙박스 영상의 한 장면. SBS 캡처

특가법이 적용돼 접수된 사건을 형사과장이 사건 발생 다음날(11월7일) “(특가법이 맞는지) 판례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다만 형사과장은 이 전 차관의 신분을 이틀 뒤(9일)에 인지했다고 진술했다. 형사과장은 같은날 A경사에게도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란 것을 알렸는데, 정보공유 차원일 수 있지만 굳이 알릴 이유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전 차관의 신분을 들은 서초서장이 “블랙박스 확인 하고 수사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면서도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 내사종결한다”는 A경사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은 부분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진상조사단은 이들이 사건을 보고하지 않고 진상 파악 과정에서도 허위 보고한 것에 대해서는 감찰조사를 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적절치 못한 사건처리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제도적으로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비위 당사자뿐 아니라 관리·감독 책임자까지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김유나·김승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