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특수청소 업체 바이오해저드의 대표 김새별(46)씨가 서울의 한 주택 현관 앞에서 두 마디 인사와 함께 짧은 묵념을 올렸다. 고인의 유품을 성심껏 정리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이렇게 보는 이 없는 혼자만의 인사를 올린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 일을 하기 전 10년간 장례 지도사로 일했다. 당시 유품 정리 등을 두고 유족과 상담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장례 지도사와 특수청소, 누군가의 삶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전 주에는 2회 작업을 했다”며 보여준 작업 도구함에는 각종 소독제 등 약품과 분무기, 수세미 등이 담겼다.
이렇게 한 달에 10여건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고 한다. 보통 유족과 상담 전화를 마친 뒤 1~2일 후 작업이 이뤄지며, 당일 오전 4시쯤 청주에서 출발해 오후 6시 전에 일을 끝낸다.
◆10여년간 마주한 죽음의 흔적… 유품의 의미 되새기게 해
10여년을 일한 만큼 죽음의 다양한 흔적을 마주한 그는 “‘유품의 의미는 뭘까’ 생각해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유품은 그것을 안고 슬퍼하는 유족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전언이다.
한번은 숨진 40대 여성이 간직해온 아버지 유품인 손목시계를 자매에게 건넸다가 ‘우리에게 의미 없으니 버려달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심한 도벽으로 부자(父子)의 연을 끊었다가 부친 사망 소식을 듣고 약 30년 만에 나타난 아들은 ‘아버지의 옛 모습이 생각날 것 같으니 모든 물건을 집에서 버리라’고 철저히 당부하기도 했단다.
특히 부모에게 숨진 자녀의 유품을 건넨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다고도 했다. 자녀를 잃은 아픔이 워낙 커 현장의 참혹함도 두려워하지 않고 김 대표가 작업하기 전 부모가 먼저 유품을 챙긴다는 얘기다.
또 특수청소 비용 걱정에 숨진 자녀의 집에서 나온 동전이라도 달라던 할머니의 요청에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돈 한 푼 받지 않은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홀로 살던 어르신 집에서 유품으로 새 제품을 발견하면 그렇게 속이 상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살아생전 자녀에게 받은 양말이나 건강식품, 냄비 등을 아껴 쓰다 새것 그대로 남긴 것인데, 특히 한 노인의 집에서 해어진 수건을 치우다 새것이 여러 장 유품으로 나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 계기로 관심↑… “세상에 선한 영향력 주고자 노력”
워낙 독특한 직업이어서 과거에도 몇몇 언론이 김 대표를 조명하기는 했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Move to heaven):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방영을 계기로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김 대표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10부작으로 제작돼 지난달 14일 처음 공개됐으며, 세상 떠난 이의 사연을 마주하는 유품정리사 한그루(탕준상 분)와 그의 후견인 조상구(이제훈 분)의 이야기를 다뤄 시청자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앞서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청소현장을 다룬 영상 10여개를 올렸다. 사회적 이슈인 고독사 등으로 관심이 커진 덕분에 편당 약 2만회에서 많게는 200만회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영상을 본 몇몇이 보내온 후원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고인의 유품 정리에 소중하게 쓰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어렵게 살다 돌아가신 분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이 많다”며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운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세상이 병들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