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 또한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낸 지 일 년 반이 넘어간다. 책을 추천하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시내로 나가는 것 외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동네를 벗어나는 일도 극히 드물어져버렸다.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강의는 줌으로 대체, 영화는 스트리밍 시스템으로 보고 장도 대개는 새벽배송 등으로 주문한다. 여행을 못 가고 지인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도 어느 결엔가 희미해져버린 듯하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무덤덤한 마음까지 들 때도 있다. 그러니까 줄곧 혼자. 한 선배에게 이런 속내를 보이자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그럴 수 있겠으나, 우리는 그러지 말자. 그 문장을 보는데 ‘우리’라는 단어가 새삼 눈에 밟혔다.
다음 학기 시간표를 결정하느라 담당자와 통화하다가 조심스럽지만 2학기 수업은 대면으로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대면 비대면의 안전성 문제를 제외하고, 다시 한 공간에서 누군가와 만난다는 사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더 떨어진 사회성 때문에 어쩌면 이제부터 혼자가 아니어도 되는 상태에 더럭 겁을 내는 것은 아닐까.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혼자 지내는 데 너무, 아니 터무니없을 만큼 나는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 함께 하는 일의 즐거움과 의미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말과 동일하게 들렸다. 종강하면서 학생들에게 시인 메리 올리버의 한 문장을 소개했다. “나는 그들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을 강조했고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일지 모른다며 수업을 마쳤다. 정작 나 자신은 혼자 시간을 보내느라 간과하고 있던 삶의 필요조건을.
평소 좋아하던 시인의 신간을 읽다가 그만 이 시 때문에 생각이 더 많아져 버리고 말았다. 제목은 ‘우리의 혼자’. 중략을 사용해서 소개하는 실례를 무릅쓴다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혼자는 바쁩니다/ 외롭거나 쓸쓸할 겨를이 없습니다/ 혼자는 오늘도 모든 걸 혼자서 다 하려고 정신이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지 않는 것도 혼자/ 그러면서도 혼자는 자기가 혼자라는 걸 누구한테 들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혼자 주변에는 온통 혼자입니다/ 혼자는 늘 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혼자들도 다 알고 있지만/ 서로 다들 혼자이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