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공항, 어떻게든 빨리 공항을 빠져 나가고 싶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남은 건 입국 심사와 짐찾기. 잰걸음 옮기는 당신은 다른 입국자들을 추월해 입국심사와 짐찾기를 서둘러 끝낸다. 마침내 공항을 나오고, 그 나라의 풍경을 제대로 눈에 담는다.
저마다의 차이야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진행되는 입국의 과정은 기계적이고, 엄격한 형식이 거의 전부라 입국장이 해당 국가를 처음 만나는 공간임을 인식하는 건 어딘지 낯설다.
조선왕실 보자기, 나전칠기, 한글, 전통춤, AI 관광지도를 보여주는 LED 미디어 월(Media Wall) 영상 콘텐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LED는 전 세계 공항에 설치된 것 중 처음으로 1.5㎜ 도트피치(dot pitch·화면을 구성하는 점 사이의 거리)를 적용한 초고밀도 스크린이다. 덕분에 전통문화를 고해상으로 구현할 수 있었는데, 특히 나전칠기 영상은 특유의 은빛이 제대로인 데다 햇빛에 비출 때 드러나는 영롱한 색깔까지 표현한다. 하늘을 나는 학과 산과 물, 나무, 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산수화 대작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디어 월 맞은편에 설치된 키네틱 아트 중에는 ‘나비와 고양이’란 제목의 모바일 책가도가 두드러진다. 삼성전자에서 일부 지원한 휴대전화 등 324대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책과 문방구 등으로 가득한 책장에서 고양이가 나비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공공장소에 키네틱 아트가 설치된 건 인천국제공항이 처음이라고 한다. 1992개의 LED 막대로 가야금의 소리를 빛의 흐름과 퍼짐으로 표현한 작품 또한 인상적이다.
67억원의 예산을 들여 첨단기술과 전통문화를 접목한 양질의 미디어 작품으로 새단장을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기대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사업을 주도한 국립고궁박물관, 한국문화재재단이 사업 시작단계부터 고민했던 바이고, 지금도 여전하다. 한국과 접촉하는 첫 물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선택한 장소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미디어 작품으로 유인하는 데 불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설치된 입국장을 빠져나가는 데는 성인 걸음으로 5분 정도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입국자들은 대체로 입국심사를 서둘러 받길 원하기 때문에 비행기 출입구와 입국심사장 사이에 설치된 미디어 작품들을 감상해 보려는 여유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애초 입국장 여러 곳을 새로 꾸미기 위해 확보한 예산을 제1터미널 동편 입국장에 집중 투입하고, 설치 작품의 질을 크게 높인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다. 한국문화재재단 우혜정 부팀장은 “장소를 확인한 자문위원들이 한 군데만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고 전했다. 심보영 주무관은 “설치 작품 하나하나가 그냥 스쳐지나가기엔 아까운 콘텐츠”라고 말했다.
공개된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입국자들이 크게 줄어든 상태. 새로운 모습의 입국장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확인하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공개 이후 설치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하니 입국자들을 좀 더 정성 들여 맞겠다는, 한국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우리의 시도와 바람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리란 기대를 해 봄직도 하다. 제1터미널 동편 입국장 외에도 서편 입국장, 제2터미널의 입국장도 새단장을 기다리고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