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구분하는 게 아직도 어려워요.”
지난 10일 광주 동구 학동 마을사랑채에 모인 다문화가정 주부 10여명은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날마다 나오는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배출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 달라고 주문했다. 다문화가정 주부들 옆에 있던 20여명의 이웃 주민들은 또박또박 쓰레기의 종류와 배출 시간 등을 알려줬다. 설명을 들은 다문화가정 주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지에 꼼꼼하게 배출 방법을 적어내려갔다.
조리사와 식당 운영자들로 구성된 희망나눔실천단이 마을텃밭 채소와 쌀, 각종 재료 등을 기부받아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또 인근 시장에서 장을 봐 밑반찬과 음식을 장만했다. 2019년 8월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지난해 1월까지 매주 한 차례 오전 8시 주민들을 위한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지난해 11월 화요아침밥상을 재개했으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잠정 중단된 상태다.
아침밥상을 자주 이용한 이연례(84)씨는 “이웃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서로 정을 쌓고 상부상조하는 계기가 됐다”며 “코로나19로 중단된 아침밥상이 다시 재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을사랑채는 지역특성에 따라 동마다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운동 무꽃동마을사랑채는 3세대가 한 집에 사는 가구가 많다. 이 때문에 3대가 함께할 수 있는 책정원을 조성하고 3대가 소통하는 토요 마을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수1동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은 지역이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주택 개·보수와 이·미용 봉사 재능기부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생계에 필요한 자동차를 운행하는 취약계층의 차량을 정비해 주는 재능기부인 ‘나눔의 카센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동구 마을공동체 김민진 팀장은 “마을의 현안을 주민 스스로 찾고 해결하면서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현재 6개동이 마을사랑채를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13개 동에 조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민 자치와 참여로 일군 ‘인문 르네상스’
광주 동구는 2018년 8월 인문도시정책과를 신설해 주목을 받았다. 주민생활 속에 인문정신을 확산하는 데 속도를 내기 위해 전국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이색적인 과를 신설한 것이다. 동구는 당시 인문도시 7대 선언을 하고 단·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7대 선언은 △주민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도시 △산책하기 좋은 도시 △책읽는 도시 △어르신이 존경받는 도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도시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는 도시 △이웃 간 담장 없는 도시 등이다.
인문도시는 관(官) 주도가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인문도시 조성의 매개는 책이다. 주민들이 누구나 접하기 쉬운 책과 연관된 콘텐츠를 매개로 하는 강좌와 체험프로그램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책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 위기의 해법과 도시공동체의 운영방식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차별화된 전략이 깔려 있다.
주민들의 인문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한 ‘동구 인문대학’의 참여율이 높다.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 12명으로 명예교수단이 구성돼 있다. 동·서양 철학과 역사, 음식문화, 육아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강의를 한다. 인문대학 강좌가 계속되면서 주민들 사이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주민들은 도시생활문제를 스스로 성찰하고 해결하는 등 주민 역량 향상에 한몫하고 있다.
이처럼 인문대학이 효과를 내자 동구는 지난해 코로나19 시대에도 강의를 중단하지 않았다. 기존 대면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인문 콘텐츠를 온라인상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동구인문 정보공유방을 개설하는 등 인문플랫폼을 구축했다. 인문자원을 발굴해 이야기로 엮은 ‘동구 인문 산책길’이 체험 탐방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서양화가 오지호가와 민족시인 문병란 생가, 이한열 열사 생가 등을 연결하는 인문산책을 조성했다. 주민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하는 인문 관광 프로그램이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