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니까 국내 문제에 관해 짧게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기자)
“글쎄요. 내가 답변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진 않지만, 아무튼….”(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미·러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공항에서 막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오르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취재진이 던진 첫 질문은 ‘외교’가 아닌 ‘국내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국내 문제’ 논하기 싫은 바이든, 원론적 대답만
마침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및 미·유럽연합(EU) 정상회의, 그리고 미·러 정상회담까지 이번 유럽 순방에서 거둔 외교적 성과를 자화자찬한 직후였다.
‘답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퉁명스러운 언급에서 국내 문제는 가급적 건너뛰고 싶은 바이든 대통령의 속내가 묻어난다. 하지만 연방의회 중간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고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 중 어느 한 곳만 장악해도 ‘바이든표’ 개혁은 좌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국길 내내 바이든 대통령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을 듯하다.
기자가 던진 국내 문제 관련 질문은 바이든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인프라 법안에 관한 것이었다. 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미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인프라 투자에 무려 2조2500억달러 규모 예산을 쏟아붓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야당인 공화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도 이견이 존재한다.
“여야 일부 의원이 초당적인 인프라 법안 수정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바이든 대통령은 “난 그것(수정안)을 보지 못했고 따라서 자세한 내용도 모른다”며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어 “백악관 비서실에서 대책을 논의 중이고 의회 상·하원의 민주당 지도부와도 협력하겠다”는 원론적 대답만 내놓았다.
◆대법관 비토 으름장에 “공화당은 반대만” 비난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은 바이든 대통령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최근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면 연방대법원에 공석이 생겨도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대법관 후보를 단 한 명도 임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에서 대법관을 비롯해 주요 공직은 모두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하는데 상원의원 다수가 반대하면 결국 대통령의 인사권 자체가 무력화할 것이란 경고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를 거치며 대법원이 보수 6 대 진보 3의 구도로 개편된 것에 여러 차례 우려를 표시해왔다. 대선 후보 시절 그는 “대통령이 되면 사법개혁을 단행하고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성도 개선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상원이 공화당 손에 넘어가는 순간 당장 본인의 대법관 인사권부터 형해화할 처지다.
‘매코널 원내대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바이든 대통령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답은 한 가지”라며 “매코널 원내대표는 아주 오랫동안 ‘반대(NO)’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고 맹비난했다.
미 정가와 언론 일각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당시 공언한 것들 가운데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극복 관련 경기부양 법률 통과 말고는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는 혹평이 쏟아진다. 그러면서 내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 중 어느 한 곳만 장악해도 바이든 행정부는 아무 것도 못 하는 ‘식물정부’로 전락할 수 있다며 “선거 전까지 바이든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분석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