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싣고 달리는 해운대 해변열차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동해남부선 옛 철길 구간 미포∼송정 4.8㎞ 달려/ 아찔한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에메랄드빛 바다 유혹/구덕포 카페에서 바다보며 커피 한 잔/서퍼들의 파라다이스 송정해변은 이미 여름

 

해운대 해변열차와 산책로

기차는 낭만이고 추억이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 부산 가는 무궁화호 객차 안에는 간식거리를 잔뜩 실은 카트가 쉼 없이 오갔다. 아버지를 졸라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사 먹으며 마냥 행복하던 기억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간이역에서는 잠시 국수 한 그릇을 말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정차시간도 넉넉했었지. 바닷가에 100층 넘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전벽해한 해운대. 포항∼부산을 오가던 동해남부선 옛 철도는 이제 ‘블루라인’이라는 도시적인 이름을 얻고 다시 태어나 낭만을 싣고 해운대 바닷길을 달린다.

 

부산 밀면

#해운대 해변열차 타고 떠나는 바다여행

 

해운대 전통시장에서 허기진 배부터 채운다. 불판 위에서 껍질을 벗긴 산 곰장어가 꿈틀대며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부산에서 빠질 수 없는 돼지국밥과 막창, 그리고 밀면까지 다양한 메뉴들도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시원한 밀면 곱빼기와 모둠만두를 먹고 나니 온 세상을 가진 듯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개장 첫 주말을 맞아 해운대에서는 많은 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다. 호텔 가든은 결혼식을 앞두고 예쁜 꽃들과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지고 있다. 마침 날도 화창하니 축복받는 결혼식이 될 것 같다.

 

엘시티와 해운대 해변열차
해운대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

바다를 구경하며 걷다 101층짜리 엘시티를 지나 언덕을 잠시 오르면 블루라인파크가 보인다. 해운대 바다열차는 이곳 미포역에서 출발해 달맞이터널∼청사포∼다릿돌전망대∼구덕포∼송정 구간 4.8㎞를 왕복운행하며 편도 25분 정도 걸린다. 1·2회 이용권보다는 자유이용권(1만3000원)을 추천한다. 모든 역에서 자유롭게 내려 주변 여행지를 둘러보고 다시 탈 수 있어서다. 미포역에 들어서자 여행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주말에는 한 시간 넘게 기다릴 수 있으니 온라인으로 미리 예매하면 편하다. 마천루 같은 엘시티 건물을 배경으로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짙은 노란색 열차가 서 있고 그 위에 독특한 스카이캡슐이 하늘을 오간다. 신비로운 해안절경을 7~10m 공중 레일에서 관람하는 스카이캡슐은 미포에서 청사포까지 2㎞ 구간만 자동으로 운행하는데 시속 4㎞로 아주 느리게 가니 인내심이 필요하다.

 

해운대 해변열차 객실

 

해운대 해변열차

동해남부선 옛 철길 구간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제의 자원 수탈과 일본인들의 해운대 관광을 위해 건설된 치욕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해방 뒤에는 포항~경주~울산~부산을 잇는 서민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다 협소한 지형 때문에 복선 전철화할 수 없어 2013년 12월 폐선됐다. 사라질 뻔했던 동해남부선 옛 철길은 아름다운 바다경관 덕분에 지난해 10월 ‘블루라인’이라는 예쁜 이름을 달고 해운대 해변열차로 우리 곁을 다시 찾아왔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에메랄드빛 바다가 유혹하는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미포역을 떠난 열차는 시속 15㎞로 천천히 움직인다. 높낮이가 다른 2열 좌석과 통창으로 꾸며져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선로 옆으로 해송이 줄을 지어 서 있고 데크길도 놓여 많은 이들이 걷거나 뛰면서 아름다운 해운대 바다를 만끽한다. 첫번째 정거장 달맞이터널에 내려 데크길을 따라 달맞이고개 해월정에 오르자 11시 방향으로 대마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데크길은 몽돌해변으로도 이어진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포토존

청사포 다릿돌전망대는 해변열차 여행의 하이라이트. 청사포역에 내려 푸른 하늘과 바다, 해송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600m쯤 걷다 보면 바다 위에 높이 세워진 아찔한 스카이워크가 보인다. 높이 20m, 길이 72.5m인 전망대 위에 섰다. 에메랄드 보석을 쏟아부은 듯 아름다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망대 끝자락에는 반달 모양의 투명바닥을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듯 스릴이 넘친다. 이곳에 누워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요즘 유행이다. 전망대 바로 앞에서부터 해상등대까지 가지런히 늘어선 암초 5개가 마치 징검다리 같아 다릿돌로 불리게 됐단다. 전복, 멍게, 해삼, 성게가 풍부해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이기도 하다.

 

청사포 전망
청사포 전망

청사포 이름에 얽힌 슬픈 사연도 전해진다. 금실이 좋은 한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물고기를 잡으려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만다. 이를 알 리 없는 아내는 바닷가 바위 옆에서 소나무를 심고 끼니도 잊은 채 매일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 모습이 안타까웠던 용왕은 자신을 대신해 푸른 뱀 한 마리를 보냈고 아내는 이 뱀을 타고 용궁에서 남편을 만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된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아내가 있던 바위를 망부석, 아내가 심은 소나무를 망부송, 마을 지명을 푸른 뱀이란 뜻을 담아 ‘청사포(靑蛇浦)’로 지었다가 나중에 푸른 모래란 뜻의 ‘청사포(靑沙浦)’로 바뀌었다. 망부송은 현재 수민이네 조개구이집 뒤에 있다.

 

청사포갈맷길 데크산책로
청사포

#서퍼들의 파라다이스 송정해변

 

다릿돌전망대에서 보통 열차를 다시 타고 송정까지 가는데 청사포갈맷길 데크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을 추천한다. 열차를 타면 절대 볼 수 없는 구덕포의 비경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송정 구간은 1.9㎞의 힐링로드로 아름다운 해송과 바다를 즐기며 걷게 된다. 기암괴석이 끊임없이 펼쳐진 바닷가 전망 좋은 자리에 여행자들이 텐트를 치고 푸른 바다를 온 몸으로 즐기고 있는 풍경은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구덕포 카페 올드머그
구덕포 해변

이 길의 중간쯤에 쉬어갈 수 있는 예쁜 카페 올드머그가 있다. 해변열차 개통에 맞춰 문을 연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짙은 커피향을 맡으며 바다 풍경과 해변열차가 오가는 풍경을 한가롭게 즐겨본다. 수심 낮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기암괴석이 아주 매력적이니 카페 앞 바다에 꼭 내려 가보길. 세모녀가 장화에 장갑, 양동이까지 장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게를 잡느라 분주하고 아이들은 물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송정해변 서핑메카 조형물
송정해변 서핑

송정해변은 서핑천국. ‘대한민국 서핑메카’라고 적힌 서핑보드를 든 거대한 곰 조형물이 선글라스를 쓴 재미있는 표정으로 여행자들을 맞는다. 초보 서퍼들은 계속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면서도 다시 보드 위에 올라서 중심을 잡느라 안간힘을 쓰며 아슬아슬한 파도타기를 즐긴다. 한겨울에도 바다 온도가 섭씨 13∼14도이고 사계절 서핑하기 적당한 안전한 파도가 치기 때문에 송정은 서핑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지상낙원이다.

 

특히 요즘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일하며 휴가를 즐기는 ‘워케이션(worcation)’이 새로운 트렌드로 뜨고 있는데 송정해변은 여기에 서핑이 결합됐다. 송정 서프홀릭 신성재 대표는 “도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는 서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재택근무와 휴가를 함께하려는 젊은층들에게 송정해변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귀띔했다. 부산의 호텔들과 연계해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짜리 호캉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한달살기 상품은 120만원에 조식, 서핑 10회 강습, 매일 무료 렌털이 제공된다.

 

송정해변

송정해변 동쪽언덕 끝에는 운치있는 정자가 우뚝 서 있다. 죽도공원(송정공원)의 팔각지붕 정자 송일정이다. 예전에는 경상 좌수영의 전쟁용 화살이 제조될 정도로 많은 대나무가 자라 죽도로 불렸단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와 달을 맞는 명소로 유명해 새해 일출이나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하러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 공원으로 가는 죽도 길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걷기 좋고 해식 작용으로 형성된 기암괴석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더 베이 일공일 요트클럽 야경
더 베이 일공일 요트클럽 야경

쾌청하던 한낮을 지나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면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자 해운대 바다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인근 동백공원 ‘더 베이 101 요트클럽’으로 달려간다. 근처에 비가 올 때 근사한 야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이 있다. 2층 카페에 앉으면 물안개에 잠긴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과 옥상 조명이 빚는 몽환적인 도심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아파트 야경이 뭐 볼 것 있겠느냐 싶겠지만 건물과 조명이 물에 투영되는 풍경이 생각보다 아주 근사하다.

 

남구 횡령산 전망대에 오르면 광안대교와 도심야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부산 최초의 도심형 유람선인 해운대 리버크루즈를 타면 APEC 나루공원을 출발해 마린시티, 광안대교까지 오가며 해운대와 광안리의 낮과 밤을 모두 즐기게 된다. 

 

부산=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