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일본이 대만 문제를 고리로 군사력 강화와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구상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이래 가속도가 붙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일본의 길을 넓혀주고 있다.
◆대만, 미·중 대치의 상징 부상
◆스가 정권, 친대만 행보 본격화
실제 스가 정권의 중국 대치 자세는 아베 정권보다 확연하다. 아베 전 총리는 외교·안보적으로 친미 일변도 정책을 전개하면서도 경제협력이 필요한 중국과의 대립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6년 8월 일본 주최 아프리카개발회의(TACAD)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처음 밝힌 뒤에도 중국의 전략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협력할 부분이 있다고 하는 등 이중적 자세를 유지했다.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과의 대립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이자 친대만 성향의 기시 노부오(岸信夫) 중의원(하원) 의원을 방위상에 임명한 것은 예고편이었다.
지난 4월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1969년 이후 처음으로 대만해협 평화·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달 27일 화상으로 진행된 유럽연합(EU)·일본 정상회담 공동문서에도 대만 문제가 언급돼 향후 일본 외교안보에서 대만 문제가 최대 현안일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백신난을 겪는 대만에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24만회분을 무상지원하면서 친대만 공공외교도 강화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 제조업체인 대만 TSMC의 연구·생산 거점 유치를 추진하는 등 국가안보 관점에서 대만 첨단기술 산업계와의 연대에 주력하고 있다.
◆우익, 개헌 향한 절호의 기회 인식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그 시점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지난 4월 대만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 보고 인용 보도)이니, 6년 이내(3월9일 필립 데이비슨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리버럴 성향의 일본 아사히신문도 대만 관련 시리즈를 시작한 첫날인 지난 6일 △중국의 대만 본격 공격 △대만 낙도 침공 △사이버 공격과 같은 하이브리드전 △우발적 충돌 4가지 시나리오를 상세히 소개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사전문가인 다카하시 고스케(高橋浩祐) 영국 제인스디펜스위클리 도쿄특파원은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해 서태평양에 진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 일본, 호주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대만 공격을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며 “미국 국방부로서는 해마다 3, 4월이 내년 예산 편성을 시작하는 시기여서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경향이 있어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대만 문제를 외교 공간 확대를 넘어 군사력 강화의 빌미로 적극 활용할 태세다. 방위성은 다음달 발표될 올해 방위백서에 처음으로 ‘대만 정세의 안정은 우리나라(일본)의 안전보장과 국제사회의 안정에 중요하다’는 내용을 명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 등 우익 의원을 중심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을 겨냥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일 정부가 연내에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열고 가이드라인 개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대만에서 유사 사태가 벌어지면 일본 자위대는 미군에게 연료, 식량 보급 등 후방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방향일 것으로 보인다.
기시 방위상은 지난달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방위예산 편성 시 1976년 이래 유지돼 온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이내 편성 방침에 얽매이지 않고 늘려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달 처음으로 규슈(九州)에서 미국·프랑스·일본의 육상훈련이, 동중국해에서는 미국·프랑스·호주·일본의 해상훈련이 실시되는 등 중국을 겨냥한 동맹 및 우호국과의 실기동훈련이 강화되고 있다.
우익 세력은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한국과의 불화에 이어 중국의 해양 진출과 대만 유사 사태를 부각해 헌법에 자위대의 근거 규정을 추가하려는 개헌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개헌이 1955년 자민당 창당 비원(悲願)이라고 규정한 아베 전 총리는 지난 4월 당 헌법개정추진본부 고문에 취임했다. 또 개헌 첫 단계로 인식되고 있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지난달 중의원에 이어 이달 11일 참의원(상원)을 통과함에 따라 개정안 제출 3년 만에 성립됐다. 개정 국민투표법은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상업시설이나 역 등에 공동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지난달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는 개헌 찬반 비율이 역전하면서 개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