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저소득가구 어려울 때 돈을 넘어 꿈과 희망 선사 [심층기획]

해마다 확대되는 근로·자녀장려금

2020년 506만가구 대상 5조1100억 지급
11년 만에 가구 수 8.6배·지급액 11.4배 증가
가구당 114만원… 빈곤층 월 소득보다 많아

근로장려금 최대 지급액 단독가구 150만원
자녀장려금 18세 미만 자녀 1인 50∼70만원

한부모가정 엄마 “위기 때마다 직접 도움”
최저 임금 생활 20대 청년은 진학 꿈 이뤄

국세청서 심사·지급… “상담 때 세심한 배려”
“그냥 돈이라는 명목이 아닌 희망이라는 명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올해 근로·자녀장려금 체험수기에서 대상을 받은 정모씨가 설명한 근로·자녀장려금의 의미다. 그는 “돈은 그저 삶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드는 수단일 뿐이지만 때론 절실하게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씨는 고교생 아들과 함께 사는 한부모가정의 엄마다. 2018년 아이가 욕실에서 깨진 세면대에 크게 다쳐 수술했을 때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없었지만 장려금 덕분에 수술비와 통원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2019년 자신이 아파 수술을 받았을 때도 일을 못했지만 장려금으로 버틸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무급휴직을 하느라 수입이 없어 아이를 학원에 못 보냈지만 장려금을 받아 9월부터는 다시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아이의 꿈과 미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고, 날갯짓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직접적 도움이 돼 준 희망과도 같았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확대되는 장려금…꿈도 희망도 커진다

21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2019년 귀속분) 근로·자녀장려금은 506만가구, 지급액은 5조1100억원이었다. 근로장려금만 처음 지급한 2009년(59만가구, 4500억원)과 비교하면 11년 만에 가구 수는 8.6배, 지급액은 11.4배가 됐다. 근로장려금과 함께 처음 자녀장려금이 지급된 2015년(236만가구, 1조7100억원)과 비교해도 5년 만에 각각 2.1배, 3.0배로 확대됐다.



근로장려세제(EITC)는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있는 저소득 빈곤층에게 가구소득과 연동해 근로장려금을 지원하는 환급형 세액공제 제도다. 일정 수준까지 근로·사업·종교인소득이 증가하면 받는 근로장려금도 증가하도록 설계돼 근로 유인 기능이 있다. 최대 지급액은 단독가구 150만원, 홑벌이가구 260만원, 맞벌이가구 300만원이다. 자녀장려세제(CTC)는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있는 저소득 근로자들에게 18세 미만 부양자녀의 양육을 보조하기 위해 가구소득과 연동해 자녀장려금을 지원하는 제도로, 자녀 1인당 50만∼70만원을 준다.

◆누군가에게는 희망, 용기, 마음의 편지

근로·자녀장려금은 자녀 수 등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지지만 2020년(2019년 귀속분) 기준 가구당 평균 114만6000원이었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의 월평균 소득이 91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에게는 한 달 소득보다 많은 금액이다.

대학 졸업 후 지난해 3월부터 최저임금으로 180만원 월급을 받는 1년 계약직 행정인턴으로 서울에서 일하던 강원도 출신 20대 청년 이모씨는 근로장려금 덕분에 희망을 되찾았다. 그는 궁핍한 생활에 우울증약을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세금을 떼고 통장에 입금된 돈은 161만원밖에 안 됐고 월세, 관리비, 가스요금, 학자금 대출을 갚으니 한 달 생활비는 50만원이 채 안 됐다. 꿈을 위해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추가 학위가 필요했지만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냈다. 그러던 어느날 통장에 근로장려금 150만원이 입금된 걸 확인했고 희망이 생겼다. 생활비 대출 잔여금을 갚고, 학점은행제 전공수업 강의료를 납부해 교육대학원 지원자격을 얻을 수 있었고 최종 합격했다. 그는 “누구보다 간절했던 내게 150만원어치의 기회가 생겼다”며 “근로장려금은 단순한 돈 150만원이 아니라 꿈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된 아이를 위해 중고 PC를 사줄 수 있어 뿌듯했다는 세 아이의 엄마,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혼자 남을 자신을 위해 신청해줘 남편의 작은 마음의 편지 같았다는 70대 여성, 아내가 좋아하는 목살과 약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70대 남성, 비참함을 딛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는 한부모가정의 아빠 등 다양한 사연들이 체험수기집을 통해 공개됐다.

◆국세청 가욋일?…“복지세정은 핵심 업무”

징수가 주업무였던 국세청에 장려금 심사·지급업무가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년밖에 안 됐다. 해당 업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직원도 꽤 있어 ‘부가 업무’로 여기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김대지 국세청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국세행정의 역할이 전통적 징수기관에서 급부행정 영역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다”며 복지세정이 주요 업무임을 언급한 바 있다. 또 “복지세정의 중요한 축인 근로장려금이 일하는 저소득가구에 신속하게 지급될 수 있도록 수급절차를 개선하고, 수급 요건을 갖추고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안내·홍보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세청 직원들과 상담사들은 장려금 신청자들이 상담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고 있다. 혹시라도 자신의 초라한 환경이 안쓰러운 동정의 시선으로 느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ARS전화, 홈택스, 모바일 홈택스 애플리케이션 ‘손택스’ 등 비대면 신청을 받는다. 장애인과 65세 이상 등은 근로장려금 상담센터나 세무서로 전화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승윤 국세청 장려세제신청과장은 “국세청이 장려금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낯설어하는 직원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해당 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보면 고생보다는 보람을 더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국세청에서 장려금 업무를 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핵심 업무로 자리를 잡으면서 인식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우상규 기자 skw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