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장에 소음을 줄여주시는 위층 분들이 훌륭하시다.”
대전의 A아파트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층간소음을 해결한 건 말싸움도, 경찰도 아니었다. 아래층에서 보낸 따뜻한 편지 한 통이었다.
‘아랫집입니다. 사실, 이사 온 첫날부터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놀랐다기보다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합니다.’
그는 편지글을 차분히 써나갔다. 이씨는 편지에서 자신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 겪은 경험을 꺼내고 “윗집의 소음을 견디면 견뎠지, 아랫집에 피해 주는 것은 마음이 편치가 않더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앞으로도 귀댁의 자녀들이 쿵쿵거리며 다녀도 지금처럼 ‘그러려니…’ 하려 한다”면서 그가 생각하는 이유를 몇가지 들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아야 하고 자신의 아이들도 어릴 적 아랫집에 피해를 줬고, 층간소음의 근본 원인이 건물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으며, 불만을 쏟아낸다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마음만 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얘기했다.
오히려 그는 얼마 전 위층에서 가구가 쓰러지는 듯한 큰소리가 났을 때 걱정했다고 한다. 그는 “혹시라도 아이의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는지 놀라 귀를 기울였습니다만 아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걷거나 뛰면서 나는 소리 정도는 괜찮은데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아이들이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네요. ^^”라고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그는 “뛰는 소리와 엄마 아빠의 고함소리로 보아 남자아이들을 키우시는 것 같은데 엄마가 특히 고생하실 것 같네요. 아들들 키우려면 엄마가 전사가 돼야죠. ^^ 그래도 한 5년간 더 고생하시면 편해지실 겁니다. 아무쪼록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 아이들이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편지와 함께 이씨 가족의 마음은 그대로 위층에 전해졌다. 아침에 윗집에서 아이들을 재촉하는 고함이 별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는 “편지 한 장에 소음을 많이 줄여주시는 위층 분들은 훌륭한 분들”이라고 했다.
이씨는 층간소음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사연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씨는 21일 세계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 할 문제인데 그러지 못하니 국민끼리 다툼만 일어나고 심지어 폭행사건, 살인사건까지 끊이지 않는다”면서 “아래층, 위층 모두가 피해자고 근본적인 해결 없이 서로를 탓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툼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행복까지 깨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일 걱정했던 점이 위층 소음에 대해 짜증을 내고 예민하게 굴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너그럽고 관용적인 대처를 보고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둔감해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는 누구다 다 알면서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