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로 생산비용 급등했는데… 전기요금 ‘폭탄 돌리기’

한전 연료비 연동제 ‘유명무실’

㎾h당 단가 3원 올려야 하지만
정부, 유보권한 발동 가격 동결
차기정부 등 인상압박 거세질 듯
일각선 ‘시장신뢰 훼손’ 지적도

산업부 “1분기 미조정액 활용
주택용 할인 축소로 인상효과”
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히 설치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2개 분기 연속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연료비 연동제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까지 연료비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가 폭탄 돌리기를 하듯 요금 인상만 미루고 있어 향후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2분기와 같은 ㎾h당 -3원으로 책정했다. 연료비 연동제는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유류 등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무역통계가격 기준 올해 4∼6월 실적 연료비 가격(세후 기준)은 ㎏당 유연탄이 평균 133.65원, LNG 490.85원, 벙커C유 521.37원이다. 2분기와 비교해 유연탄은 20원 이상, 벙커C유는 78원 이상 올랐고, LNG는 18원가량 내렸다. 이를 고려한 연료비 조정단가는 ㎾h당 0원으로, 원래 2분기 조정단가(-3원)보다 3원을 올려야 하지만 정부가 유보 권한을 발동해 가격을 동결시켰다.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은 증가했지만, 소비자에게 받는 요금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원료를 대부분 수입하는 만큼 이 차액은 한전이 모두 떠안게 되는 구조다.

정부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효과 등으로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2.6% 올라 9년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에 전기요금까지 인상될 경우 물가 상승 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제 연료 가격이 급격히 상승해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요인이 발생했으나 코로나19 장기화와 2분기 이후 높은 물가상승률, 1분기 조정단가 결정 시 발생한 미조정액 활용” 등을 동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또 내달부터 월 200㎾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일반 가구 중 저소득층 등을 제외한 625만가구의 주택용 필수사용공제 할인액(2000원)이 축소되면서 사실상 2000원의 요금 인상 효과가 발생한 점도 이번 동결의 한 요인이다.

정부는 앞서 1분기 조정단가 산정 때 국제유가 하락 폭을 고려하면 ㎾h당 10.5원을 내려야 했으나 분기별 상하한액 기준인 3원만 내려 이번에 미조정액을 활용할 수 있었다. 연간 상하한액 기준은 5원이다.

산업부는 이번 전기요금 동결 결정에 대한 비판을 예상한 탓인지 이례적으로 4분기 요금적용 계획 방향도 밝혔다. 산업부는 “하반기에도 현재와 같이 높은 연료비 수준이 유지되거나 상승추세가 지속되면 4분기에는 연료비 변동분을 조정단가에 반영되도록 검토하겠다”고 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현재 70달러를 돌파한 유가가 하반기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어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4분기에는 내년 차기 대통령 선거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만큼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물가 지표인 전기요금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해져 결국 과거처럼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내놓는다. 정부는 2011년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가 유가 상승기와 맞물려 시행을 미루다 2014년 폐지한 바 있다.

정부의 전력시장에 대한 규제로 인해 시장의 신뢰가 훼손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은 이번에도 전기요금 인상에 실패하면서 실적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전의 적자를 최대 1조7757억원에서 52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1분기에는 571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연료비 연동제의 도입 취지는 국제 연료비 변동에 따라 요금이 조금씩 조정되면서 충격을 줄이고 손실이나 수익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것이었는데 최근 연속된 동결로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4분기 한전의 적자폭이 확대된다면 정부가 계속적인 동결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