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차량과 아침 운동 나온 주민이 눈에 띄기 시작한 지난 22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지하철 7호선 하계역 인근 공원에서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모자와 얇은 등산복 차림으로 등장한 노득기(68)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부터 건넸다. 40여 일간 시달렸던 해고의 아픔은 이미 너털웃음 앞에 사라진 듯했다. 노씨는 지난 4월 말 근로계약 갱신을 이틀 앞두고 아파트와 신규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의 이른바 ‘이모티콘 문자 메시지 해고’에 일터를 떠났던 경비원이다.
◆“그런 메시지는 처음이었다”
◆“달걀로 바위 치는 것 같았던 공론화… 아파트 주민 도움이 컸다”
해고 문제를 공론화하기란 쉽지 않았다는 게 노씨의 경험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는 컸지만, 여태 동료와 함께 목소리를 내본 일이 없었기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였다고 그는 기억했다.
복직 의지를 불태운 노씨 등 여섯 경비원은 ‘최소한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경비원에 대한 천대가 더욱 비일비재해질 것도 같았다고 한다.
이때 아파트 주민들이 천군만마로 힘을 보탰다. 경비원의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시작 닷새 만에 주민 700여명이 참여했고, 나중에 1500명까지 늘어났다고 노씨는 전했다.
노원구의 중재가 더해지면서 지난 16일 마침내 구와 경비원들, 용역업체 간 협약식이 성사돼 고용 문제는 당분간 안심할 수 있게 됐다. 적절치 못했던 ‘메시지 해고 통보’에 대한 공식 사과 외에 △6월 안으로 희망자의 관내 아파트 복직 △1년 이상 근로계약 보장 위해 노력 △향후 용역업체 승계 과정에서 같은 일의 재발 방지 노력을 하자고 합의에 이르렀다. 이날 현재 노씨와 동료 1명은 새 근무지에서 일하고 있으며, 다른 4명은 배치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우려가 남았다
아파트 경비원 고용승계 관련 복직으로 매듭지은 선례를 남겼지만, 앞으로 갑작스런 해고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파트 경비원은 보통 직접고용이 아닌 용역업체와의 계약에 따르는 만큼 기간이 만료되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막고자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비원의 근무지 배치 시 권익 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근로기간이 유지되게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주택관리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 4일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경비원 고용승계 규정을 ‘아파트 관리규약’에 담은 단지에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밝힌 서울시의 ‘경비노동자 노동인권 보호 및 권리구제 종합대책’도 나왔다. 경기도 역시 올해 처음 도입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모니터링단’에 힘입어 해고 경비원의 복직을 이끌어내는 등 경비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권익 신장에 앞장서는 중이다.
노씨도 수개월마다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갱신해야 한다는 경비원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근무 시작 1개월 후 갱신이 이뤄지고, 2개월과 3개월 후에도 같은 일이 진행된다”며 “이전 근무지에서도 여러 번 갱신했다”고 털어놨다. 짧으면 1개월 후 정든 직장을 떠날 수도 있는 신세다. 이번 협약으로 최소 1년간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안도한 노씨는 “가장이 취업하면 1년은 일해야 하는데, 그 안에 해고되면 가족 볼 면목이 없다”며 쓴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경비노동자의 심정을 담은 뼈 있는 한마디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