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봉화읍에서 내성천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펫고등학교’라는 팻말이 나온다. 이 학교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해 폐교 위기까지 내몰렸다. 고민 끝에 학교 측은 2019년 기존 상업고에서 반려동물을 테마로 과감히 특성화를 꾀하면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2019년 당시 24명에 불과했던 전교생 수가 작년 말 130명으로 5배가량 늘어난 데다 매년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상 교장은 “지난해는 (경쟁률이) 3대 1 정도였지만 올해는 3.5대 1, 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달성한 학과도 있다”면서 “인성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맞춤형 학과 운영’으로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서 많은 학생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 1500만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국의 대학이 앞다퉈 관련 학과를 신설해 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펫 산업’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취업 전망이 밝다는 판단에서다.
25일 교육부에 따르면 반려동물(펫 산업과) 관련 학과를 운영 중인 전국의 대학(전문대학 포함)은 총 15곳으로 집계됐다. 2019년 4년제 대학 2곳이 처음으로 학과를 신설한 뒤 2020년 전문대 5곳, 2021년 전문대 7곳이 신설됐다. 내년도 학과 신설을 추진하는 대학이 3∼4곳으로 파악됐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로 대학의 입시 경쟁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과 비교할 때, 반려동물학과는 되레 상승한 곳이 더 많다. 관련 학과로는 애완동물학과가 대중적이다. 애완동물 미용사나 펫패션디자이너, 동물사육사, 반려동물행동교정사, 브리더(사육사), 펫창업가 등을 양성한다. 한국펫고를 시작으로 경기 고양고, 대전 유성생명과학고 등 최근 고등학교에서도 관련 학과를 설치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관해 배울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최인순 신라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은 “펫 관련 산업은 국가가 중점 지원하는 동물보호 복지 제도의 고도화에 따른 관련 시장 급성장으로 장래가 유망하다”며 “이런 사회적 요구에 맞춰 관련 학과를 운영하려는 대학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펫 산업’ 뜨니 관련 학과 인기도 덩달아 ‘쑥’
반려동물 관련 직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학과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올해 전국 12개 전문대학 반려동물 (보건 분야) 학과의 신입생 충원율은 100%를 기록했다. 2년 연속 신입생 충원율 100%를 기록한 학교도 7곳에 이른다. 입학 경쟁률도 높다. 연성대는 반려동물과 신설 첫해인 2019년 지원자 1560명이 몰려 37.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모집 인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정대 애완동물과는 230명 모집에 1140명이, 연암대 동물보호계열은 153명 모집에 1163명이 몰려 각각 4.9대 1, 7.61대 1을 기록했다. 이들 대학은 수의간호, 애견미용, 동물사육, 매개치료 등 세분화 및 전문화한 교육으로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전문가와 현직 수의사를 교수로 초빙하는 한편 외국 유명 반려동물 학교 연수 프로그램 운영 등 실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연암대 관계자는 “4년제 대학 학사과정은 이론 수업이 더 많지만 전문대학은 외과 실습, 동물 행동교정 등 반려동물 산업 전반에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의사를 배출하는 수의대학에서도 높은 입시 경쟁률을 기록해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진학사 등에 따르면 2021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전국 수의학과 10곳의 경쟁률은 평균 11대 1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 대학의 평균 정시 경쟁률(3.6대 1)의 4배 가까운 수치다. 여기엔 90%에 가까운 취업률과 펫 산업의 성장으로 수의사 등 관련 종사자에 대한 대중 인식이 크게 개선된 점도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수도권 한 대형입시학원 관계자는 “수의대 위상이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의학계열에 준해 ‘의치한수’로 불릴 정도로 입시 경쟁률은 물론 합격선도 종전보다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내년 국가자격증 시행… 전망 밝은 ‘펫잡’
반려동물 관련 학과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반려동물 복지와 관련해 정부가 제도 정비에 들어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지원과 반려동물 사업 활성화가 기대되는 만큼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쌓으려는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 KB금융지주의 ‘2021년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604만가구로 전체 가구 3곳 중 1곳(29.7%)꼴이었다. 전체 반려인은 1448만명에 달해 반려인 1500만명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부터 동물복지 증진을 위해 반려동물 보유세와 동물복지기금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다. 지자체도 반려동물과 관련한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강원 평창은 동물의료센터와 애견호텔 등을 포함한 반려동물 관광테마파크를 조성 중이다. 춘천에서도 지난 4월 반려견 테마파크 ‘강아지숲’이 개장했다.
올해 8월부터 ‘수의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각 대학의 관련 학과 개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펫 산업은 성장산업이지만 아직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 발급은 협회나 민간 사설단체 위주로 국가공인자격증은 전무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초 처음으로 ‘동물보건사’ 시험을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보건사’는 동물병원이나 관련 기관에서 동물을 간호하고 수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전문인력이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한 자격 중 하나는 전문대학 이상 동물 간호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필수 교육과정을 이수하려는 학생들이 관련 학과로 더욱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전문대학 관계자는 “동물보건사 제도를 골자로 한 수의사법 개정으로 제도적 틀이 어느 정도 갖춰진 만큼 내년부터 교육과정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장형 전문가 육성… 취업·창업 적극 지원”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대할 정도로 가슴 따뜻하고 실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습니다.”
서명기(사진) 계명문화대학교 펫토탈케어학부 교수는 25일 “‘키움에서 케어’라는 슬로건 아래 전공 교육은 물론 급변하는 사회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융복합 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이 취업이나 창업 등 즉각적인 사회 진출이 가능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펫토탈케어학부’는 전문적인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과 현장 중심의 실습 강화를 통해 실무형 인재인 반려동물 토탈케어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지난 3월 개설됐다. 펫스타일리스트와 펫매니지먼트 등 2개 전공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펫스타일리스트전공은 반려동물 미용, 마사지케어 등 뷰티케어 중점으로, 펫매니지먼트 전공은 반려동물 관련 행동 및 예절 교육이나 마케팅 등 관리 부문 위주의 이론과 실습, 견학을 통해 학생들의 역량을 높이고 있다.
서 교수는 “전문 교수진, 실습 연계 학생 프로그램 등 반려동물에 대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이 학과의 경쟁력”이라며 “학생들이 반려동물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동물행동상담사, 동물보건사, 동물매개심리상담사 등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반려동물 산업 성장에 따른 무분별한 대학의 학과 개설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냈다.
서 교수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전문대학에 애완동물학과가 약 40여개가 운영됐으나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며 “반려동물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대학도 학생 수요를 고려해 학과 운영에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대구=김덕용 기자 kimdy@segye.com,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