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않고 빌려 쓰고 나눠 쓰니… 돈 벌어주는 공유 [S 스토리]

개인사업자들 초기 투자 비용 부담 커
시설 등 공유로 고정지출 줄여 만족감
자녀 둔 부모는 장난감 대여 적극 활용
서울시민 77% “내 물건 공유 의향 있어”
지자체 ‘따릉이’ 같은 성공모델 발굴 고민

인터넷으로 쿠키를 판매하는 엄수연(42)씨는 주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매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공유주방 ‘위쿡’으로 출근해 쿠키를 굽는다. 이곳에선 40~50명의 사업자가 같은 주방을 공유하며 음식을 만들어 판매한다. 오븐과 믹서 등 요리기구와 다양한 집기들과 냉장고, 냉동고가 마련돼 있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하나의 공간에 한 개 사업자만이 요리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었지만 2년 전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시범사업으로 선정하며 이 같은 공유주방의 정식 운영이 가능해졌다.

 

엄씨가 공유주방을 이용하기 위해 내는 돈은 300시간에 225만원. 한 달에 45만원 수준이다. 그는 “공유주방을 통해 임대료와 시설비를 아끼니 고정 지출이 많지 않다”며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어 주문량만큼 만들면 돼 재료값을 아끼고 소진시점도 직접 설정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만족해했다. 위쿡처럼 온라인 판매용 음식을 만드는 주방과 배달용 음식을 만드는 주방 등을 합치면 서울에 100여곳 이상의 공유주방이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방·미용실·숙박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공유경제

 

25일 업계에 따르면 공유 차부터 공유 숙박, 공유 오피스, 공유 킥보드 등 ‘공유’가 붙은 사업들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불필요한 소유보다 대여를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엄씨처럼 1인 기업에 뛰어든 창업자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2040억달러(약 230조원) 정도인 공유·임시 경제 규모는 2023년 4550억달러(51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OECD는 공유·임시 경제의 핵심분야로 운송과 숙박, 주문형 서비스, 크라우드 펀딩 등을 꼽았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공유주방 위쿡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업자들. 위쿡 제공

국내에 참신한 공유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6년차 헤어디자이너 김영진(29)씨는 미용실 창업을 알아보다 지난 3월 ‘공유미용실’에 입주했다. 공유미용실은 공간을 비롯해 미용 설비들을 여러 헤어디자이너가 공유하며 각자 개인 사업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김씨가 이용하는 서울 강남의 ‘팔레트에이치’의 경우 월 이용료 180만원에다 매달 매출의 20%를 내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서울 강남에 미용실을 내기 위해 드는 투자비용보다는 다소 저렴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 개인사업을 시작한 헤어디자이너들이 공유미용실을 많이 이용한다”며 “미용실에 소속되면 외부교육이나 활동에 제약이 많은데 공유미용실을 통해 영업을 하면 운영시간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시민 70% “자원 공유 필요… 도서·공구·운동기구 공유 의사”

 

시민들 역시 공유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2주간 시민 4000명을 대상으로 ‘2020 공유도시 정책수요 발굴을 위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 10명 중 7명(70.3%)은 “자원 공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유가 필요한 이유로는 △불필요한 자원의 절약(39.1%)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28.3%) △공유를 통한 지출 감축(21.0%) △공동체 활성화(9.0%) △공유산업 육성을 위해(2.6%) 등이 꼽혔다.

 

서울시민 4명 중 3명가량(77.2%)은 자신의 소유 물건을 직접 공유할 의사를 갖고 있었다. 공유 가능한 물건을 묻는 질문에는 도서(66.7%)가 가장 많았고 가정용 공구(34.6%), 운동기구(32.8%), 취미도구(31.7%), 중·소형 가전제품(31.3%), 이동수단(26.0%), 가구(25.5%), 주방용품·식기(22.2%) 등의 순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다양한 공유경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각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자전거를 비롯해 공구, 텃밭, 주차 공간 등 다양한 자원이 공유되고 있다. 특히 장난감 대여소는 공유자전거에 이어 대표적인 지자체 공유경제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의 경우 63개의 장난감 대여소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채강민(35)씨는 2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장난감 대여소를 알게 된 이후 4살 아이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장난감을 빌리고 있다. 채씨는 “아이가 워낙 빨리 크니까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금세 달라지고 아이들은 장난감에 쉽게 질린다”며 “장난감 대여소를 통해 다양한 장난감을 빌릴 수 있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망원장난감대여점'에서 한 시민이 장난감을 빌리고 있다. 마포구 제공

◆“무분별한 공유보다 사회 전체 이익 따져봐야”

 

각 지자체는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처럼 지역만의 특징을 반영한 공유경제 활성화를 고민하고 있다. 서울 자치구를 비롯해 부산시와 인천시 등은 공유경제 선도기업을 지원하는 사업 공모에 나서고 있다. 경남도, 경기 고양시, 전북 전주시 등도 공유경제 아이디어 공모 사업에 나섰다.

 

자원의 효율을 더하는 공유경제의 장점에 공감하면서도 빠르게 증가하는 공유모델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공유경제 산업이 기존 시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카풀 서비스의 경우 택시 업계와 마찰을 빚었고 공유 킥보드 사업은 안전문제와 인도 주차로 도시 경관을 해치는 등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김석호 경남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에서는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충분히 학습되지 않아 외국에서 발생한 사업들이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유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사업과 자본 중심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이익이 사회에 환원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유경제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줄 필요가 있고 동시에 기존 시장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사업의 경우 타당성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