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9일 대권 도전 선언에서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며 ‘반문(반문재인) 빅텐트’ 구상을 밝혔다. 보수 진영에 중심 깃발을 꽂으면서도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반문 주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날 정치참여 선언의 절반가량을 현 정부 비판에 할애했다. 첫 공개 행보였던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서 “차차 말씀드리겠다”는 발언 이후 답답하다는 평가와 함께 ‘윤차차’라는 별칭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반전시키고, 국민이 환호했던 ‘공격수 윤석열’의 면모를 각인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 측은 선언에 앞서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고 했던 그때의 시원한 모습을 다시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역설하며 보수 진영의 가치를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며 “자유민주주의는 승자를 위한 것이고 그 이외의 사람은 도외시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가치와 입장이 같은가’라는 질문에도 “국민의힘이 과거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겪었고 국민이 보시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겠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철학 측면에서 저와 생각을 같이한다”고 답했다.
이날 행사에는 권성동·정진석·유상범 등 20여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참석했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망가진 나라를 의원님들과 국민과 함께 바로 세우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 입당에는 여전히 거리를 뒀다. 윤 전 총장은 “저는 보수나 진보, 중도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지성과 상식을 토대로 국가가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그 안에는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언제 입당할 것인지’에 대해선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맞수로 거론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윤 전 총장은 앞서 밝힌 대로 민심 투어를 거쳐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반문 진보까지 아우르는 ‘반문 주자’로서 정체성을 앞세워 최대한 중도 진영의 지지를 확보한 뒤 국민의힘과 관계설정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국민의힘과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놓고 물밑 샅바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에선 최 전 원장 등 대안 주자에도 힘을 싣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선언문에서 “열 가지 중 아홉 가지 생각은 달라도 한 가지 생각, 정권 교체에 생각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거대 의석과 이권 카르텔의 호위를 받는 이 정권은 막강하다”며 “분열은 곧 필패”라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의 입당 시기는 향후 지지율이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대세다. 그의 지지율이 정치적 이벤트에 따라 급변하는 기반 없는 반문 정서라면 세력과 기반 확보를 위해 국민의힘 입당이 빨라질 수 있다. 반면 윤 전 총장 개인을 향한 굳건한 지지로 확인되면 8월에 시작되는 국민의힘 경선 버스에 탑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가 선출된 이후 막판 단일화까지 입당 문제를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현미·곽은산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