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 이유로 출석 못한다면서 홀로 산책 즐긴 전두환…재판부는 ‘불이익’ 경고

민주당 광주시당 “법원은 강제구인 등 엄정한 법 집행 즉각 나서라” 촉구

연합뉴스

 

건강상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채 집 근처에서 홀로 산책을 즐긴 전두환 전 대통령(90·사진)에 대해 법원의 강제구인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전 전 대통령은 5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채 산책을 나왔다 언론에 포착됐다. 또 취재 기자를 향해 ’당신 누구요’라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전씨는 광주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날 보란 듯이 서울 자택에서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며 “건강상 이유로 재판 출석을 거부한 안하무인인 그의 행태는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목불인견”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무릇 사람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과오와 행위를 겸손하게 돌아보고 반성하는 게 어른다운 자세일 것”이라며 “그런데도 전씨는 반성은커녕 날이 갈수록 더 뻔뻔해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법원은 강제구인 등 엄정한 법 집행에 즉각 나서야 한다”며 “전씨는 이미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도 박탈된 상태이기 때문에 눈치 볼 필요조차 없다”고 촉구했다. 

 

나아가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후대에 물려줘선 안 된다”며 “철면피와 같은 전씨를 지금 당장 단죄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을 한 고인을 두고 왜곡된 악의적 주장을 했다며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원색 비난한 데 대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해 11월30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이 ‘사실 오인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검찰 역시 ‘법리 오해로 형량이 가볍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 1부(김재근 부장판사)는 이날 법정동 201호 형사 대법정에서 열린 2회 공판기일을 맞아 피고인 측에 증거 신청 등을 제한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재판에서 주심 판사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됐다가 복귀하면서 이날 공판 갱신 절차를 다시 밟게 됐다. 형사 재판 피고인은 신원 확인을 위한 인정신문이 열리는 첫 공판기일과 선고기일에는 출석해야 하며 공판 갱신 절차를 진행할 때도 출석해 다시 인정신문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이 2회 연속 정당한 사유 없이 법정에 나오지 않자 방어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고 피고인 없이 궐석재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이날 1시간 동안 재판을 진행하면서 4차례에 걸쳐 피고인의 출석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인정신문에 불출석한 피고인에 대해 제재해야 한다는 검사 주장에 동의한다며 “피고인의 증거 제출 등은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고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증을 충분히 하고 싶다면 피고인의 출석이 전제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또 ”궐석재판 허용은 피고인이 자신의 방어권·변론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는 일종의 제재 규정”이라며 “피고가 법정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 신청과 자료 제출에 제약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만 받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1980년 5월21일과 5월27일 광주 도심 헬기 사격과 관련해 당시 출동한 육군 항공대 조종사들을 증인 신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500MD’와 ‘UH-1H’ 헬기의 조종사 9명을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1심에서 대부분 증인 신문을 하거나 증인 신청을 했음에도 출석하지 않았다며 새 증인이 있다면 1∼2명 할 수 있겠지만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에서는 당장 신청한 증거(증인·검증)와 사실 조회를 채택하기 어렵다며 보류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형사소송법 규정은 피고인의 불출석으로 인한 재판 지연 등을 막기 위한 규정으로, 공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지 아무 제재 없이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피고인이 계속 불출석하면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고인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뉴스1에 “전씨가 계속 불출석하고, 현 재판부는 여러 흐름으로 놓고 보면 그 공정성이 심히 의심이 되는 상황”이라며 “3년7개월의 이 재판의 과정도 너무나 정말 지치고 또 그만큼이나 속이 타들어가는데, 언제까지 계속해서 이런 재판이 진행될 것인지 정말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 전 대통령의 다음 재판은 내달 9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재판부는 피고 측의 증거 신청이 정당한지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 기일에 채택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그간 전 전 대통령 측은 법리상의 이유를 들어 불출석 재판을 주장하고 있으며, 앞서 지난달 14일 열린 첫 공판 기일은 물론이고 연기된 이날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항소하면서 2심을 서울에서 받게 해달라며 관할 이전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그간 헬기 사격은 없었으며, 따라서 명예훼손의 고의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날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불출석에 따른 제재 규정에 대해 새겨들었다”며 출석 여부를 다시 고민해보겠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