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다른 ‘살인폭염’ 온실가스 못 줄이면 매년 올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지구촌 곳곳 ‘침묵의 살인자’ 공포

캐나다 리턴, 100여년 만에 49.6도 치솟아
폭염 다음날 산불… 15분 만에 마을 전체 화염
BC주 일주일간 719명 돌연사… 평소 3배

美 워싱턴주 응급실, 코로나 초기와 비슷
언론들 에어컨 구입 위한 대출 소개까지

라트비아 새벽 최저 23.7도… 관측 이래 최고
핀란드·에스토니아 역대 최고 기온 경신

정체된 고기압이 만든 열돔현상 등 원인
50년간 폭염 발생 3배·지속 기간 2배 ↑
학계 “이번 폭염 수만년에 한번 일어날 일”
지난 1일(현지시간) 하늘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위드의 산불 현장으로 소방차들이 달려가고 있다. 위드=AFP연합뉴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 따른 피해가 잇따른 가운데 러시아와 인도, 유럽 등에서도 불볕더위가 이어지며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 공포가 확산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정체된 고기압에 따른 ‘열돔’(Heat Dome) 현상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폭염 피해가 집중된 북서부 지역 주지사들과 화상회의에서 “기후변화로 폭염과 가뭄이 악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평소 에어컨 없이 지내다 폭염에 맞닥뜨린 미·캐나다에선 고가인 에어컨 구매를 위한 주택담보대출 등 자금 융통 방안까지 언론에 소개되는 실정이다.

 

◆50도 폭염 다음날 산불… 15분 만에 마을 사라져

 

캐나다 밴쿠버에서 북동쪽으로 260㎞ 떨어진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소도시 리턴은 지난달 29일 기온이 49.6도까지 치솟았다. 기존 캐나다 최고기온(45도)을 크게 상회했고 중동 아부다비보다 더웠다. 이들 지역의 기상 관측이 시작된 것은 1800년대 후반. CNN은 “이번 폭염은 100여년 만의 일”이라고 전했다.

 

250명가량의 리턴 주민들은 이튿날 저녁 확산한 산불로 대피령이 떨어지자 짐도 챙기지 못한 채 피난했다. 얀 폴더먼 리턴 시장은 BBC방송에 “15분 만에 마을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애통해했다. 주민 제프 채프먼은 “부모님이 산불을 피해 피신한 곳으로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결국 돌아가셨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산불이 확산한 수요일 밤에 급하게 대피하다 보니 생사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리턴은 개인 주택 등 마을의 90% 이상이 완전히 소실됐고 주민들이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리턴에서 헬리콥터가 폭염으로 인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리턴=AP연합뉴스

이처럼 폭염이 산불 등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캐나다 긴급구조대는 BC주 전역에서 170건 이상의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다면서 “대피 지시가 곳곳에서 내려지고 일부 지역에 군이 투입됐다”고 소개했다. 사망자도 속출했다. 리사 러포인트 BC주 수석 검시관은 “1주일간 이어진 폭염으로 이 지역에서 719명이 돌연사했는데 평소의 3배에 달하는 전례없는 수치”라고 우려했다.

 

미 북서부 오리건주와 워싱턴주도 피해가 이어졌다. 오리건주의 폭염 사망자는 100명에 육박했는데, 포틀랜드를 포함한 멀트노마카운티에 피해가 집중됐다. 포틀랜드는 지난달 29일 46.6도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1965년 종전 최고치보다 5도나 높았고 폭염에 경전철 운행이 한때 중단됐다. 오리건주 유진에선 올림픽 선수 선발을 위한 육상 경기 도중 트랙 온도가 42.2도까지 치솟자 경기가 중단됐다.

 

워싱턴주도 최소 30명이 불볕더위로 숨졌다. 폭염이 집중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자 1792명의 21%는 입원이 필요했다. 시애틀하버뷰 메디컬센터의 스티브 미첼 응급의학과장은 “폭염에 따른 응급환자 급증은 코로나19 초기 단계 때의 응급실 상황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리건주 보건대 응급실도 환자로 넘쳐났다”며 “코로나19 최악의 시기에도 이 대학 응급실이 이렇게 바쁘게 돌아간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팜스프링스는 지난달 중순 50.6도를 기록했고, 사막 데스밸리는 53.5도까지 치솟았다.

 

미·캐나다 외에 유럽도 폭염을 경험했다. 독일은 지난달 나흘 연속으로 낮 기온이 35도 이상으로 치솟았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열대야가 이어졌다. 라트비아는 새벽 최저기온이 23.7도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유럽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에서도 지난달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남유럽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는 지난달 43.7도로 올해 유럽 전역에서 최고기온을 나타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도 지난달 23일 34.8도를 기록, 6월 기온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인도 수도 뉴델리와 주변 도시들도 지난달 30일 40도를 웃돌아 평소보다 7도가량 기온이 올랐다. 지중해 국가 키프로스는 지난 4일 더위와 가뭄에 따른 대규모 산불로 최소 4명의 농업 근로자가 숨졌다. 키프로스 산림부 관계자는 “키프로스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라고 말했다.

 

북극권도 최근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이라크는 수도 바그다드 등에서 50도가 넘는 고온과 전기 시스템 붕괴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임시 공휴일을 지정했다. CNN방송은 “전례 없는 더위가 수백명을 숨지게 하고 도시를 파괴했다”며 “기후변화가 북반구를 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고기압과 열섬이 폭염 불러… 끝이 아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폭염을 ‘특정 도시의 하루 최저 온도가 7~8월 평균기온의 상위 85% 이상을 초과하는 날이 이틀 연속 이어지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추운 도시에 사는 사람과 사막 거주자가 느끼는 더위 정도가 다르기에 이처럼 상대적으로 규정한다.

 

기상 전문가들은 초여름인 6월부터 미·캐나다 등이 40∼50도를 넘나들게 된 배경으로 대형 열돔 현상을 들고 있다. 차고 더운 공기를 섞어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대기권 중상층의 고기압이 정체돼 반구형 지붕처럼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현상이다. 아울러 2000년부터 시작된 서부 대가뭄으로 지표가 스스로 식을 수가 없어 더욱 뜨거워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동북쪽으로 153㎞ 떨어진 리턴 마을이 산불로 전소된 모습을 헬기에서 찍은 사진. 리턴=AP연합뉴스

미 환경보호청(EPA)이 공개한 미국 기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 발생건수는 1960년대 연간 2건에서 2010년대 연간 6건으로 증가했다. 폭염 지속 기간도 1960년대 22일에서 2010년대 68.6일로 46일가량 길어졌다.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캐나다 환경부의 선임 기후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뉴욕타임스(NYT)에 “폭염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젠 인간과 관련된 요인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며 온난화를 촉진하는 탄소 배출 등을 폭염 원인으로 지목했다. 영국 기상학자 니코스 크리스티디스는 “이번 폭염은 수만년에나 한 번 일어날 일”이라며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폭염 사태는 2100년까지 매년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WP는 “이미 1970∼1980년대부터 기후학자들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폭염이 더 잦고 더 오래 지속되며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경고해왔다”며 “많은 이들이 전례 없는 이번 폭염에 충격을 표시하지만, 수십년간 그 조짐은 계속돼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3년 유럽 폭염으로 7만명이 희생됐고, 2010년 러시아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5만명이 숨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인데도 피해 규모에 비해 덜 주목받는다”며 “폭염의 위험성을 신속히 알리는 조기경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폭염은 야간에 고온인 경우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며 “더운 낮을 겪은 몸은 밤에 이를 식히고 쉬어야 하는데 밤 공기가 너무 따듯하면 심장이 체온조절을 위해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어 밤에도 추가적인 압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한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토론토=신화연합뉴스

AFP통신은 지난달 23일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작성한 보고서 초안을 인용해 “코로나19 다음에 폭염이 세계적으로 대규모 사망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AP통신은 북미 서부 지역의 폭염 희생자 중에는 에어컨, 선풍기도 없이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의학저널 랜싯에 최근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폭염에 희생된 65세 이상 노인은 30만명가량인데, 2014~2018년 폭염에 숨진 65세 이상 노인은 2000~2004년보다 54% 증가했다.

 

◆“美 북서부 주민들, 빚 내서라도 에어컨 장만해야”

 

NYT 등 미 언론은 “북서부 지역의 상당수 집들은 에어컨이 없다”며 “선풍기나 창문 개방만으로는 폭염을 견뎌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폭스뉴스는 “폭염 지역 주민들은 에어컨을 새로 장만하든지 연료 효율이 좋은 최신 제품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면서도 “성능 좋은 냉난방 시스템은 대략 8000달러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저소득 가정엔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AP통신도 “미국에서 중앙 냉난방 시스템이 없는 가정에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평균 6500달러에서 1만4000달러까지 든다”고 소개했다.

 

폭스뉴스는 자금 융통을 위해 개인대출, 주택담보대출, 저금리 신용카드 등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1000달러의 여유자금도 없는 미국인이 대부분이란 점에서 에어컨 장만은 꿈같은 얘기지만 직장이 든든하고 신용이 좋으면 개인대출을, 집 소유주는 집값 상승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고 고객 유치를 위해 최대 18개월 무이자로 발급하는 신용카드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달 폭염을 경험한 일부 지역은 에어컨이 동나기도 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