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죠. 우리가 풀뿌리 아닙니까?”
2017년 4월,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19대 대선 진출에 좌절한 뒤 캠프 해단식에서 지지자들한테 한 말이다. 그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으며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했는데 이만큼 잘했으니, 다음에는 더 잘하겠죠”라며 함께한 이들을 위로했다. 자칫 침통했을 분위기는 “해단식이 아니라 후보로 선출된 정식 선대위 출정식 같다”는 그의 말에 활기를 되찾았다.
◆학교 대신 공장 다니며 장애 얻은 ‘흙수저’
그는 흙수저 출신이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온 가족이 경기 성남으로 이주했고, 생계를 위해 곧장 공장에 나가야 했다. 만 12세 때였다. 이름 없는 수공업 목걸이 공장을 시작으로 동마고무, 대양실업, 아주냉동, 오리엔트시계 공장을 전전했다. 미성년자였지만 생계를 위해 남의 이름을 빌려 위장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이 눌려 부러진 뼈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 지사는 지금도 왼팔이 곧게 펴지지 않는다.
또래들이 교실에 앉아 있을 시간에 직장 선배들한테 맞아가며 일하고, 팔을 다치고, 각종 유해물질을 들이마신 바람에 후각을 일부 잃었다. 극단적 선택을 두 차례 시도한 적도 있다. 그 무렵 이 지사는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세 문장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남에게 맞지 않는 것’, ‘배불리 먹는 것’, ‘자유롭게 다니는 것’.
이 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력 첫 줄에 자신을 ‘소년 노동자’(1976~1981년)라고 밝히고 있다.
◆판검사 임관 대신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 주도
소년공 시절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를 진학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8기로 입소했다. 그는 판검사 임관 대신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 지사가 연수생 시절이던 1987~1988년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았을 때다. 군사정권이 주는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는 선례를 이미 천정배 변호사(사법연수원 8기)가 마련했고, 바로 위 기수 수석합격자 김선수 현 대법관도 연수원 수료 뒤 곧장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 지사는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연수원 특강을 들은 이상 재야에서 활동하겠다는 뜻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지사는 이후 시민단체 ‘성남시민모임’을 창립, 2000년 분당 백궁 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당시 성남시장과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는 등 부동산 비리 근절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그는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무상교복, 청년배당, 이번엔 ‘기본소득’… 포퓰리즘 논란 극복이 관건
성남시장에는 재수 끝에 2010년 당선돼 연임했다. 취임 직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그는 무상교복, 청년배당 등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이 지사 본인이 겪어왔던 어려움을 청년 계층이 재차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정책 입안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7월 경기지사에 취임한 이후에도 강한 추진력으로 화제가 됐다.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주장해 온 24시간 운항 ‘닥터 헬기’를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도내 계곡 정비사업과 지역화폐형 재난지원금 지급 등 굵직한 정책들도 현실화했다.
이 지사의 대표 구호 ‘이재명은 합니다’에는 지자체장으로서 각종 정책 성과를 내온 점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지난 3월 기준 공약사업 363개 중 349개를 완료했거나 이행 중으로, 공약 이행률 96.1%를 기록했다. 대표 브랜드는 ‘기본소득’이다.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사용 기간이 정해진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해 소비 총량을 늘리고 경제 활성화를 이루자는 취지다.
반면 경쟁 주자들은 이 지사의 정책 실효성을 부각하며 지지율 반등을 노리고 있다. 이 지사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주택 등 ‘기본 시리즈’의 포퓰리즘 논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로봇세 도입이 로봇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형수 욕설’ 등 내밀한 가정사와 ‘여배우 스캔들’ 의혹 등을 겨눈 당내 네거티브도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