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2300t·처리비 3억’ 한사코 아니라던 은마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에 한숨 돌렸을까 [밀착취재]

기자 방문에 예민한 은마아파트 입주민들 "쓰레기 쌓인 아파트라 하면 당연히 싫어하지 않겠냐"
관리사무소 직원 "쓰레기 처리 비용은 1억5000만원"
지난 9일 오전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 지상 주차장의 한복판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키 165㎝인 기자(사진)가 까치발을 들고 봐도 정상(?)을 보기 쉽지 않을 정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9일 오전 찾은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에는 기자를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내는 주민이 많았다. 특히 지상 주차장 한복판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를 사진으로 담는 기자를 따라 차를 움직이며 예의주시 하는 운전자도 있었고, ‘어디서 왔느냐’고 대뜸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었다.

 

◆“누가 자기 집 더러운 걸 좋아하겠어요”

 

이렇게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던 중 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대뜸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사진 찍은 것 아니에요? 사진 지우세요. 휴대폰 좀 봅시다”

 

은마 아파트 주민이라면서 노골적으로 취재를 방해(?)할 태세였다. 집값에 예민한 주민 입장에서 최근 쓰레기 더미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지자 아파트의 이미지가 손상될까 우려한 데 따른 과잉(?) 대응으로 보였다.

 

이렇게 사진 찍는 것을 막더니 “어디에서 왔어요? 따라오세요”라며 앞장서서 경비원을 데려왔다. 

 

이 남성은 “쓰레기 (쌓인) 아파트라 하면 당연히 싫어하지 않겠느냐”며 “누가 자기 집 더러운 걸 좋아하겠느냐”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집값에도 영향이 가서 입주민들이 대단히 예민한 상태”라며 “쓰레기를 치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비용 부담 관련해서 말도 많으니 일단 관리사무실로 가자”고 막무가내로 막았다.

 

이 남성 말대로 은마 아파트의 대규모 쓰레기는 40년 전부터 주민들의 골칫거리였다. 그간 이사를 나간 입주민이 버린 폐기물이 지하실로 옮겨져 각 동 지하실에 쌓여왔다.

 

관리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파리와 모기가 들끓는 바람에 오래 전부터 민원이 쏟아졌다. 이에 입주민과 아파트, 강남구청이 여러 차례 쓰레기 처리에 관한 논의를 해왔다. 세입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아파트 특성상 쓰레기 처리비용 부담을 원치 않는 입주민이 많았고, 여기에 재개발 기대가 겹쳐 문제 해결은 나날이 지연됐다. 그러다 단시간에 재건축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지난달 29일 동대표 과반수의 동의로 폐기물 처리작업을 시작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생각나는 쓰레기 더미 속 폐기물들

지난 9일 오전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쌓인 쓰레기 더미들 사이로 보이는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와 롤러스케이트.

 

2004년에 발행된 기념패, ‘대학축전서곡’이라고 적힌 비디오테이프, 이젠 촌스러워보이기까지 한 핑크색 카세트테이프, 헤진 축구공, 롤러스케이트 그리고 요즘은 찾기 힘든 휘황찬란한 무늬의 메트리스까지…

 

아파트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쓰레기 더미에는 40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979년 준공 후 거주했던 입주민이 버린 것들이 지하에 방치됐다 이번에 빛(?)을 보게 됐다는데,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에 소품으로 나올 법한 폐기물이 비를 맞아 더욱 추레해보였다.

 

비와 함께 쾨쾨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더니 지하실로 내려갈 수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다랐다. 지하실의 쓰레기 창고를 처리하다 잠시 밖에서 쉬고 있던 직원들이 나서더니 “여기 들어가면 안 돼요. 관리 사무소로 가세요”라고 막아섰다.

 

◆“쓰레기 처리비용 3억5000만원이 아니라 1억5000만원”

지난 9일 오전 서울 대치동 은마 아파트 지상 주차장의 한복판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날선 주민 만큼 관리사무소 직원도 예민해보였다.

 

그는 ‘쓰레기가 2300t이 넘고 쓰레기 처리 비용이 3억5000만원’이라고 보도된 기사들에 대해 “정확하게 측량된 양은 없지만 2300t이 넘는다는 건 근거 없는 이야기이며, 쓰레기 처리 비용은 1억5000만원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파트 자체 예산만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직원은 “주민의 돈을 따로 걷을 계획은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세입자나 소유자 돈을 따로 걷지 않고 전년도에 사용하지 않은 ‘미처분 이익 잉여금’과 ‘2021년 관리 외 수익비용’으로 쓰레기를 처리하기로 입주민 서면 동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철회로 한숨 돌릴까

 

희소식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소위를 열어 앞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2년의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이 조항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고, 의무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는 게 그 골자다.

 

은마 아파트처럼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집이 낡고 협소한 만큼 집주인은 외지에 살면서 세입자에게 전세나 월세를 주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해 이 조항을 포함한 6·17 대책 발표 후 은마 아파트에도 집주인이 분양권을 얻기 위해 돌아가면서 이사 오가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실거주 의무 조항 폐지로 이사 수요가 줄면 그만큼 그에 수반되는 쓰레기도 줄어들지 않을까 입주민들은 기대하는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