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곳곳에 놓인 좌대들을 점령한 고양이들은 영국 출신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가 만든 가짜 고양이들이다. 실감나게 제작된 모형 고양이들을 그는 ‘불법 침입자들’이라고 이름붙였다. 고급 취향을 가진 배운 사람들, 그들만의 예술 세계를 집도 소속도 없이 자유로운 길고양이들이 점령하게 한 것. 갠더는 이들을 “인사이더의 세상에 들어온 아웃사이더”라며 “엘리트적 예술에 날리는 유쾌한 한 방”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스페이스케이(K)에서 열리고 있는 라이언 갠더의 개인전 ‘변화율’(The Rates of Change) 현장이다. 갠더는 시각예술가임에도 색맹을 가졌고, 휠체어에 의지한다.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개념미술을 선도하고 있는 작가다.
길고양이들이 깔고 누운 좌대들은 실제 미술사와 미술시장에서 역사적 작품들이 놓은 좌대를 그대로 본떠 제작한 것이다. 경매에서 약 1000억원에 낙찰됐던 제프 쿤스의 토끼가 놓였던 좌대를 그 모양 그대로 만드는 식이다.
그는 팬데믹으로 서울에 오지 못하는 대신 스페이스K와 진행한 온라인 인터뷰에서 “예술은 카레이싱이나 축구,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지만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어 “저 역시 예술이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그 사실이 싫다”고 말한다. 공장 노동자로 평생을 산 아버지를 두기도 한 그는 “예술이 엘리트적이어선 안 된다”고도 강조한다.
그는 “제 작업 역시 지적인 감상을 요구하고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저는 작품에 무언가를 집어넣어 사람들에게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고 말한다. 전시에서 ‘갠더식 꼬아보기’에 자주 등장하는 위트나 유머가 그 ‘무언가’ 중 하나다. 그가 펼쳐낸 전시장에서는 미술관이 두려운 ‘아웃사이더’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에 참여하는 ‘인사이더’가 된다. 9월 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