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 총성 없는 ‘녹색 전쟁’이 시작됐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이 공개된 14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의원들도 ‘탄소국경세’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둘 다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비용을 물리겠다는 취지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과 탈탄소 경제 주도권 확보라는 실리가 만나 한국과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EU CBAM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제품이 EU 국가로 수입될 때 수입업자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배출권거래제(ETS) 하에서 각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는 것처럼, 수입업자들은 수입품 생산 과정에서 나온 탄소 배출량만큼 CBAM 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탄소 가격은 t당 정해지며 ETS에서 거래되는 탄소 가격과 동일한 선으로 결정된다.
유럽과 미국이 동시에 탄소국경세를 들고 나온 건 온실가스 감축이 탈탄소 경제 주도권을 확보하는 문제로 넘어왔다는 것을 뜻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유럽의 탄소국경세 발표가 겹친 건 우연이지만, 중국을 비롯한 다른 오염국가를 압박하기 위해 양측이 협력해야 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에드 마키 미 민주 상원의원은 “미국과 EU는 중국이나 다른 국가가 우리의 높은 (환경) 기준에 편승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분명한 리더십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앨 고어 전 미 부통령도 이날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유럽이 아무리 온실가스를 저감하더라도 어떤 나라는 여전히 ‘우린 그런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라고 할 것”이라며 “이런 일을 막기 위해 CBAM 같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며, 미국도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CBAM과 탄소국경세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탈탄소 경제 전환은 발등의 불이 됐다. 정부는 EU의 CBAM 도입에 따른 산업계 영향을 긴급 점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박진규 차관 주재로 철강·알루미늄 기업 임원들과 화상 간담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박 차관은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민관이 합심해 철저히 대응해나가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세계적 추세인 탄소중립이 우리 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업계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해달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EU 관계국들과 양자 협의 등을 진행하며 CBAM을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합치하도록 설계·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제도가 불필요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나라가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정부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법안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우리 입장을 마련한 후 EU 관계국들과 지속해서 협의할 계획이다. 또 관계부처 공동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와 연관된 국내 제도를 점검하고, 민관 공동협의회도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