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속헹씨'들은 '찜통' 더위에 선풍기 한 대로 버텼다 [밀착취재]

‘무더위 피해’ 주거취약층 거주지 가보니

경기 북부 농촌 곳곳 숙소 밀집
10평 남짓 공간 외국인 7명 살아
선풍기조차 없는 곳도 대다수
도심 속 반지하·노후주택도 열악
“기후변화 피해 커져… 대책 시급”
지난 9일 찾은 경기 지역 농촌의 한 비닐하우스형 숙소 모습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어요. 많이 더워요.”

 

지난 9일 경기 북부의 한 농촌에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만난 캄보디아인 A씨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바쁘게 채소를 수확하고 있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0도였지만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비닐하우스 안의 체감온도는 더욱 높았다. 그야말로 ‘푹푹 찌는’ 날씨는 ‘더운 나라’에서 온 A씨에게도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마친 A씨가 돌아간 곳은 근처의 또 다른 비닐하우스였다. 다른 비닐하우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입구에 신발장과 빨랫감이 놓여있다는 것. 이곳은 A씨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였다. 100여개가 몰려있는 비닐하우스촌 곳곳에 비슷한 모양의 숙소가 자리했다.

 

A씨는 1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안 가건물에서 6명의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지낸다. 숙소 내부에 들어서자 덥고 습한 공기가 훅 밀려 나왔다. 냉방시설이라고는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A씨는 “그래도 선풍기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선풍기가 없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A씨에게 여름 나기가 힘든 것은 무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비가 올 때마다 숙소에 물이 넘치지 않을지 항상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숙소는 대개 농로 옆 저지대에 위치해 수해에 취약한 구조다. 이날 둘러본 숙소들 옆에는 전날 내린 비로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있었다. 비가 내리면 언제든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넘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지대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주변에 물이 고여 있다

지난해 말 인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인 속헹씨가 간경화 등 합병증으로 숨진 뒤 외국인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실태가 조명됐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주거 환경이었다. 당시 속헹씨는 한겨울임에도 난방시설조차 제대로 없는 숙소에서 숨을 거뒀다. 이에 경기도가 외국인노동자 주거환경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38%가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대부분의 농어촌 이주노동자 숙소가 불법이다. 사람이 살 수 없고, 살아서도 안 된다는 뜻”이라며 “수해뿐만 아니라 한파나 폭염 같은 모든 재해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A씨 등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 숙소에는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제2의 속헹씨’들이 있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의 심술이 두려운 주거취약계층은 도심에도 많다. 서울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홀로 아이 4명을 키우는 김지희(31·가명)씨의 집은 비가 올 때마다 창문과 콘센트 구멍으로 물이 샌다. 물 자국과 곰팡이가 가득한 창문은 시트지로 가려둔 상태다. 지난해 이사 후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김씨는 “집주인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가 쫓겨날까 봐 더 얘기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곰팡이 탓인지 김씨 아이들은 감기에도 자주 걸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 횟수가 많다”며 허위로 진료를 받은 것은 아닌지 물어봤을 정도다. 김씨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만 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김유성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 소장은 “반지하나 노후주택에서 늘 겪던 추위, 더위 등의 문제가 최근 폭염과 혹한, 집중호우 등이 심해지면서 더 가중됐다.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주거취약계층에게 기후위기는 실존의 위기다.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도 “안정적으로 주거를 유지할 수 있는 주택이 공공 차원에서 대량 공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