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서부 지역에선 매를 비롯한 맹금류 새끼들이 비행 능력을 얻기도 전에 둥지에서 벗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록적 폭염을 견디다 못해 뛰어내리는 것이다. 운 좋으면 무사히 땅에 내려와 구조되지만 날개나 다리, 머리 등에 심한 부상을 입어 재활에 실패해 안락사되기도 한다. 기후변화는 이처럼 생태계까지 교란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오리건주에선 최근 나흘간 쿠퍼매 새끼 100여마리가 구조돼 환경 비영리단체(NGO) 포틀랜드 오듀본에 보내졌다. 이 단체 재활센터가 보통 일 년에 쿠퍼매 새끼 12마리 정도를 수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규모다.
밥 샐린저 포틀랜드 오듀본 보존국장은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기후변화 영향은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년간 조류 보존을 위해 일해온 사람으로서 무서운 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건들이 빠른 속도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누구도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네팔 남부 치트완국립공원에선 란타나 등 외래식물들이 말썽이다. 기온 상승과 불규칙한 강우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 결과 야생동물 서식지인 초원이 줄고 있다.
또 우기의 전례 없는 홍수와 봄철 장기간 가뭄으로 습지는 메말라 가고 있다. 이로 인해 공원 동쪽에 살던 인도코뿔소들은 서식지를 잃었다.
네팔 사우라하의 생물다양성보전센터 관계자는 “너무 많은 물과 너무 적은 물이 문제”라며 “이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변화시키면서 공원의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부수적인 피해도 낳고 있다. 공원의 일부 동물들이 더 나은 목초지와 물을 찾아 공원 근처 마을에 들어오면서 주민들과 충돌하거나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외래식물 제거 등 공원의 유지·보수 작업엔 연간 수입(2억9500만루피)의 6분의 1 수준인 5000만루피(약 4억7950만원)가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밀렵꾼들을 막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던 이 공원은 기후변화로 서식지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달 초 캐나다 해안에선 홍합, 따개비 등 해양생물 10억여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했을 것이란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할리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동물학) 연구팀은 지역 해변에서 폐사한 개체수를 조사해 이같이 추산하면서 “해양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P는 “주말부터 미국 서북부와 캐나다에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후가 야생동물들에게 점점 더 많은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