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기간 일본을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개최도 무산됐다. 청와대는 어제 “한·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 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협의를 나눴다”며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지만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미흡하며 그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했다. 제반 상황은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망언 파문과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소마 공사 거취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적재적소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한 게 정상회담 무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임기 초의 과거사 관련 입장을 바꾸면서까지 일본에 전향적 태도를 요구했다. 문재인정부는 2018년 전임 박근혜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새롭게 협상해야 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부의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고, 3·1절 기념사에선 “과거사는 과거사이고, 미래 지향적인 것은 그것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우선 해제 등 정상회담 성과를 담보하기 위한 물밑협상을 일본 측이 외면함에 따라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 무산으로 양국관계가 격랑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양국 정상의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한·일 정상회담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문 대통령은 임기를 9개월 남긴 상황이고 스가 총리는 9월 총선거를 앞둔 처지여서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형편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일제 강제동원 판결에 따른 배상문제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알 수 없는 데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의 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양국 관계가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한·미·일 안보 공조다. 당장 내일 일본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가 열린다. 3국 간에는 북핵 문제 등 공조해야 할 현안이 많아 협력 복원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을 이웃나라라고 부르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하고 있다. 일본은 한·일관계 개선의 기회를 걷어찬 데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