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로 인골을 모았는데, 이제는 연구실이 거의 포화상태입니다. 정년이 5년 정도밖에 남질 않아서 앞으로 이걸 어떻게 할지가 큰 고민입니다.”
국내 고인골(古人骨) 연구의 권위자인 동아대 김재현 교수의 말이다. 동아대박물관에 보내는 게 좋겠지만 박물관에서 인골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인골이나 미라, 목재, 씨앗과 같은 출토 유기물의 연구, 관리 등을 전적으로 연구자 개인 혹은 특정 기관의 흥미, 의지에 맡겨두는 현실에서 비롯된 고민거리다. 출토 유기물은 한반도인의 유전학적, 생물학적 특징을 밝히는 1차 자료이자 삶의 근거가 되었던 생활·자연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단초다. 하지만 그것의 보관이나 관리, 연구 지원의 근거가 되는 법적, 제도적 시스템은 없다시피 하다.
목재나 씨앗 같은 유기물의 처지도 같다. 목재, 씨앗의 가치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고환경 복원 연구가 잘 보여준다. 연구소는 신라 왕성이던 월성의 해자에서 나오는 유기물들을 물체질로 일일이 걸러내 1600여년 전 경주의 자연환경 중 일부를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연구 자료가 된 유기물 중에는 티끌 크기의 꽃가루도 있다. 이런 가치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발굴 현장에서 유기물은 폐기의 대상일 뿐이다. 나이테 연구 등을 통해 연대 측정의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는 덩치 큰 나무들조차 유물이 아니라면 버리는 게 적지 않은지라 씨앗이나 꽃가루 같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은 출토 유기물이 법적, 제도적 보존이나 연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 그것의 처리는 전적으로 현장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립기관이 담당하는 발굴 현장에서조차 인골의 발굴 사실을 보고서에만 밝혀 놓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연구를 위해 따로 보관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비용, 인력은 전적으로 연구자, 기관이 부담해야 한다. 유기물의 보관, 연구는 오롯이 연구자 개인 혹은 발굴기관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 움직임이 일었다. 2014년, 2016년 두 차례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회기가 종료되며 자동폐기됐다. 문화재계는 이번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다시 제출한 매장법 개정안이 통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개정안은 발굴 유기물을 ‘중요출토자료’로 규정했다. 인골, 미라 외 중요출토자료의 구체적인 항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중요출토자료의 체계적인 연구 및 보관을 위하여 전문기관을 지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 “중요출토자료 전문기관에 대해 연구 및 보관 등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유기물을 중요출토자료라고 한 것은 “원형 유지가 중요한 문화재의 범주에 유기물을 넣을 경우 연구에 필수인 원형 변화를 수반하는 검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발굴되는 유기물 전부를 보존의 대상으로 삼아 규제하기보다는 국가 지원을 명시함으로써 보관, 연구를 활성화하겠다는 데 중점을 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법률이 개정되면 발굴 유기물 보호, 연구에 국가가 개입할 근거가 마련된다”며 “개별적으로 활동 중인 연구자, 기관의 네트워크도 만들어 좀 더 활발한 연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