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주 120시간’ 발언에 직장인들 “황당, 비현실적”

윤 전 총장 “주 120시간 일하고 마음껏 쉬어야” 인터뷰 논란
“‘크런치 모드’ 합의사항 아닌데… 언급 부적절” 시각도
尹 “왜곡…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뜻 아냐”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 120시간 근무’ 발언에 여권 인사들이 융단폭격을 가하는 가운데 직장인들도 비판적인 반응이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스타트업계 대표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려던 것이었지만,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검사도 그렇게는 일 못 할 것”, “주 120시간? 산수를 잘 못 하는 것 아닌가”라고 냉소했다.

 

윤 전 총장은 20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 여권은 “퇴행적 인식”이라며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인터뷰에서 ‘크런치 모드’를 이야기한 것인데, 52시간 근무 예외조항의 예시로 들기에는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IT 업계에서는 최근 크런치 모드의 부작용과 폐해에 대한 문제 인식이 커지면서 이를 줄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크런치 모드란 업무 마감 시한이 임박해 고강도 마무리 근무를 하는 게임업계 관행을 가리킨다.

 

직장인들도 “비현실적”이라는 반응이다. 우선 윤 전 총장이 말한 주 120시간 근무가 현행 1주 최대 근로시간인 52시간의 두 배가 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규제 완화를 논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IT 업체를 다니는 직장인 안모씨(33)는 “지금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우회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규제를) 풀어줄 생각부터 하고 있다”며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지 않은데, 어떻게 규제를 더 풀어주나”라고 말했다. 직장인 구모씨(29)도 “(윤 전 총장이) 일하는 만큼 월급을 늘려주겠다는 말은 없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도 윤 전 총장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한 이용자는 “윤 전 총장이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검사도 그렇게는 일 못 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윤 전 총장이) 산수를 잘 못 하나”라고 비꼬는 반응도 나왔다.

 

윤 전 총장이 일률적인 ‘주 52시간 근무’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크런치 모드를 언급한 점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근 게임업계의 과도한 장시간 근로에 대해 정치권 등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업계 자체적으로도 이를 줄여가는 추세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업계 노동자의 ‘크런치 모드 경험률’은 23.7%로 전년(60.6%)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지속일도 7.5일로 2019년(16일)보다 감소했다.

 

그러나 윤 총장의 발언은 ‘크런치 모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돼 반발을 샀다는 지적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더 일할 필요가 있을 때도 일괄적인 근무시간 제한으로 수당을 못 받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근무시간 제한보다는 업무 쏠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윤 전 총장의) 설명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 전 총장 측은 ‘주 120시간 근무’ 논란에 대해 “자꾸 왜곡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대구 서문시장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근로자들이 (주) 120시간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2주 전 청년스타트업 행사에서 애로사항을 물어봤더니, (청년들이) ‘집중 근무는 노사 합의로 예외를 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