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장마철은 한반도를 덮친 무더위를 식히지도 못한 채 지난 19일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 때문에 연일 폭염이 기승이다.
21일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서울 35.3도, 춘천 35.9도, 충남 아산 36.7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이 관측됐다. 서쪽 내륙을 중심으로는 이번주 후반 낮 최고기온이 38도 이상 오르는 곳도 있겠다. 더위의 끝은 중·장기 예보와 단기 예보가 종합된 복잡한 예측이기 때문에 아직 다음달 더위까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이른 장마 종료 △티베트 고기압 발달 △지구의 대기 흐름 등을 고려하면 올해 극심한 더위를 예상했다.
◆장마 조기 종료와 티베트 고기압 확장
최근 남쪽에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밀고 올라오면서 정체전선은 북쪽으로 밀리고 우리나라는 고기압 영향권에 들어갔다. 장마가 빨리 끝나면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가 당겨지고 그해 폭염이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커진다.
최우석 수원대 데이터과학부 교수가 1979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평균 장마 종료 시기와 6∼7월 폭염일수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8월이 되기 전 16일 이상 폭염이 나타난 2018년과 1994년은 장마가 가장 빨리 끝난 해이기도 했다. 반면 1987년은 8월10일까지 장마가 지속된 해였는데 폭염일수가 4일에도 못 미쳤다. 올해 장마 기간은 17일에 그쳤다. 중부지방 기준으로 31.5일간 이어지며 7월26일 종료된 평년값에 한참 못 미친다. 최 교수는 “연도별로 폭염 시작일이 제각각이어도 폭염이 끝나는 시기는 8월 말로 큰 차이가 없다”며 “올해 이른 폭염도 장마 조기 종료와 관련됐다”고 말했다.
장마가 짧으면 지면이 뜨거워져 더위를 부추긴다. 토양 수분량과 연관이 있어서다. 뙤약볕이 내리쬐면 물기를 머금은 땅은 수분을 증발시켜 열기를 식힐 수 있다. 그러나 토양이 마른 상태면 수분 증발이 어려워 토양의 온도 조절능력이 약해진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성질의 티베트 고기압도 이번주 우리나라 폭염의 원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 대기 중·하층을 덮는다면 티베트 고기압은 대기 상층부에 영향을 미치는 ‘키 큰 고기압’이다. 두 고기압이 우리나라 대기에 자리 잡으면 우리나라는 뜨거운 솥뚜껑 안에 갇힌 듯이 강력한 열기에 둘러싸인다.
◆전 지구적인 동서남북 파동 흐름
올해 더위를 전망하려면 한반도 상공뿐 아니라 전 지구적 대기의 흐름도 살펴봐야 한다. 물에 돌을 던지면 수면 위로 파동이 퍼져나가듯이 지구 대기에서도 한 곳에 변화가 나타나면 이에 맞물려 후속 파동들이 생긴다.
파동은 중위도에서 동서로 나타날 수도, 남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동서 패턴은 환지구원격상관(CGT)패턴, 남북 패턴은 태평양-일본(PJ)패턴으로 불린다. 이런 패턴이 나타나면 대기 흐름이 약해지며 우리나라를 솥뚜껑처럼 덮은 상층 고기압이 동아시아, 태평양, 북미, 북유럽, 서남아시아에 한 개씩 자리 잡고 수일에서 수주씩 정체한다. 공기 흐름이 멈춘 채 푹푹 찌는 날씨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8년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 지속된 폭염도 CGT패턴 영향이다.
이런 패턴이 생기려면 인도 서북부 강수량, 대서양 대류현상,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북극진동도 중위도 고기압 정체를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 폭염연구센터장은 “2018년과 올해 공통점이 북극진동이 강하게 유지됐다는 것”이라며 “아직 CGT패턴이나 PJ패턴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7월 하순이나 8월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CGT패턴이나 PJ패턴 모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학계에서는 최근 이런 패턴의 발생에 더 주목한다. 배경에는 지구온난화가 있다. 전에도 발생한 폭염이지만 지구온난화로 배경온도가 더 높아진 상황에서는 폭염 강도가 훨씬 증폭된다.
정지훈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기상예보는 확률게임으로 보면 된다”며 “이런 패턴은 100년 전, 200년 전에도 있었지만 얼마나 강력히, 얼마나 오래 정체하느냐와 지구온난화를 떼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