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감정을 저장하는 편도체, 기억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해마를 중심으로 점점 회상에 잠기게 된다. 그리하여 중년과 노년에서 회상은 한 인간의 인격이자 지식이며, 선택이고 모든 것이 된다.” (권택영의 책 ‘감정 연구’에서)
남편과 사별한 75세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신혼 때 구입한 집에 혼자 남았다. 출가한 아들과는 소원해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딸은 갑자기 찾아와 대뜸 돈을 빌려 달라며 속을 긁는다. 치매가 온 것 같아 병원을 자주 찾지만, 3시간 기다려서 의사가 내놓은 말이라고는 ‘상태를 지켜보자’는 것뿐이다. 결국은 건강을 위해 각종 영양제를 과다 복용하고 스스로 온몸에 파스를 붙이는 수밖에 없다.
◆연극 같은 연출, 보이는 내면의 소리
모모코는 매일 아침 눈을 떠야 하는 것부터가 곤욕이다. 내면에서 무언가 그녀를 짓누르고는 ‘일어나봤자 좋은 일 같은 건 없어’라고 속삭인다. 그래 그럴 테지. 해야 할 일도 만날 누군가도 없지만, 이불을 걷고 밤새 굳었던 몸을 펴는 일로 노인의 하루는 시작된다.
아침으로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를 먹고 살림을 한다. 그런데 웬 남정네 셋이 자꾸 그녀를 둘러싸고 멋대로 떠들어 댄다. 머릿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눈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모모코는 치매를 의심하지만, 사실 이들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주변을 맴도는 외로움이다. 밀쳐내도 다시 달라붙는 이 녀석들과의 동거는 살아가는 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영화는 모모코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내면세계와 현실세계를 섞어놨다. 마치 영화 속에서 또 다른 연극을 보는 듯한 연출로 인해 관객들은 두 가지 세계를 그녀의 시선을 통해 보듯이 감상하게 된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75살 할머니의 일상과 내면의 갈등을 그리다 보니까 큰 사건들이 없어서 연출적으로 다양한 효과를 사용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나를 혼자서 살게 하려고 죽은 거야
홀로 된다는 것은 외롭고 낯설지만, 새로운 자극이다. 모모코는 지금 상황을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름이 전부였던 과거와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계기로 삼는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아프지만, 일종의 ‘해방감’으로 표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 모모코(아오이 유우)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남편이 죽었을 때 한 줌의 기쁨이 있었다”며 비로소 솔직하게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그러면서 “이건 그의 배려야. 남편은 나를 혼자서 살게 하려고 죽은 거야. 이게 슈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의미야. 나는 혼자서 갈 거야”라고 선언한다.
영화는 유독 모모코가 식사하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먹는다는 것은 곧 남은 생에 대한 의지를 의미한다. 혼자 걸어가려면 먹어야 하니까. 고향에서 도망치며 자신을 ‘신여성’으로 지칭한 그녀는 노년에 와서야 진정으로 속박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택한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겪는 ‘혼자’라는 것이 오랫동안 꿈꿔온 자유와 독립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영화는 2018년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책은 발매 후 24일 만에 50만부를 돌파하는 대기록을 남겼고, 아마존 재팬 소설 분야 1위에 오르기도 했다.